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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참꼬막과 중용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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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봉천제일시장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 마실 곳을 찾다가 퍽 반가운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10여년 전 자주 드나들던 남도식 주점 문에 붙어 있는 '벌교 참꼬막 개시'라는 안내였다. 그러고 보니 11월이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났는데, 꼬막은 이때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짭조름한 제철 참꼬막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파전에 막걸리, 양꼬치에 칭다오 못지않은 환상의 조합 아니던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다고 꼬막을 허투루 주문할 수는 없어 새꼬막이 아닌 참꼬막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꼬막이 매한가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엄연히 종류가 다르다. 크게 참꼬막, 새꼬막, 피조개로 분류하는데 피조개야 크기가 워낙 달라 쉬 구분할 수 있지만 참꼬막과 새꼬막은 얼핏 보면 생김새가 비슷해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맛은 큰 차이가 있다. 참꼬막은 진한 육즙을 품고 있고 쫄깃한 식감이 두드러지지만 새꼬막은 살이 미끈거려 다소 맛이 떨어진다. 또 갯벌에서 채취하는 참꼬막은 양식이 쉽지 않아 대부분이 자연산이지만 새꼬막은 양식이 가능하고 대량으로 채취할 수 있다.
완전히 자라는 데도 참꼬막이 두 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당연히 가격도 참꼬막이 서너 배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꼬막이 많이 나는 벌교 등 전라남도에서는 참꼬막을 최고로 쳤고 새꼬막은 좀 가벼이 여겼다. 벌교 바로 옆 동네 고흥이 고향인 지인 A는 무시 당한다 싶으면 "저것들이 나를 새꼬막 취급을 혀" 하며 화를 내곤 했는데 새꼬막은 '똥고막'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니 화를 낼 만도 했다. 참꼬막 입장에서도 생긴 모양이 비슷하다고 새꼬막과 같이 취급하면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초동여담]참꼬막과 중용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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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꼬막을 씻고 삶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꼬막 한 접시가 앞에 놓였다. 귀한 몸인 까닭에 개수는 적었고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은 모양인지 씨알은 잘았다. 과거에는 이 꼬막을 깔 때 수저를 지렛대로 사용하거나 손가락 끝으로 껍질에 패인 골을 잡아 벌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쉽게 깔 수 있는 도구가 있어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직 뜨거운 참꼬막 입을 벌리는데 주인이 다급하게 참견을 했다. "안에 있는 국물이 흐르지 않게 까시오. 그 국물을 다 먹어야 된께." 어설퍼 보이는 자가 참꼬막의 '참맛'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이 우려에는 꼬막을 이렇게 잘 삶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자부심도 살짝 배어 있었다. 일찍이 조정래도 올해 출간 30주년을 맞은 소설 '태백산맥'에 꼬막 삶는 일부터 솜씨가 시작된다며 그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잘 삶은 참꼬막에 대해선 이 소설에 이렇게 설명돼 있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은 무치나 마나가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그 슬쩍이라는 것이 말 같이 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자취 시절 꼬막 좀 삶아 본 경험을 덧붙이면 꼬막을 물에 넣고 중불로 삶기 시작해 계속 뒤섞어 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삶아진 몇 개가 입을 벌리고 삶던 물은 점점 어두운 색깔로 물들어 가는데 이때 불을 꺼야 한다. 모두 입을 벌리기 기다리면 꼬막의 참맛은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잘 삶겨 물기가 반드르르 도는 참꼬막을 씹다 입 안의 간기를 시원한 맥주로 헹구면서 생각했다. 이 적절한 삶기의 정도야말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중용의 맛'이 아닐까. 비록 국민이 새꼬막 취급 당하는 세상일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참꼬막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김철현 디지털뉴스룸 기자 kch@asiae.co.kr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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