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최근 발표된 9월 청년실업률은 9.4%로 역대 최고였습니다. 한 취업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은 하루 평균 2.3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항이 복잡하거나 공을 들여야 하는 자소서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밤을 새 써내려 가기도 합니다. 반면 인사담당자들의 서류전형 검토 시간은 평균 11.4분 정도입니다. 취업이 절실한 취준생들은 취업시장에서 만년 '을'이 되기 일쑤죠. 취준생들에게 사이다가 될만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입사지원서 대신 '입사거부서'를 쓴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이 쓴 입사 거부서는 7년 동안 자그마치 1000여통. 프랑스 청년 쥘리앵 프레비외는 미술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들어야 했던 질문은 "길을 가는데 길 위에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슬픔을 느낍니까?" 대체 이 질문이 인턴사원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또 다른 면접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면접관들의 거만한 태도는 청년의 심기를 건드렸다. 회사라는 이름의 집단이 한 개인을 얼마만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지 단시간 안에 경험하게 된 것.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는 입사거부서를 지원동기서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서 썼다. 프랑스 채용 문화에서 지원동기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이나 관공서의 정규직, 비정규직 일자리는 물론 편의점이나 카페 임시직 일자리를 구할 때도 프랑스인들은 지원동기서를 작성한다. 프랑스인들에게 이는 일종의 사회적 관례로서의 의미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문서의 글이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프레비외의 입사거부서 역시 모두 편지 형식이다.
그가 보낸 편지에 대해 답장을 전해준 회사는 50여 군데. 5%의 회신율이다. 꽤나 많은 답장을 받은 것 같지만, 대부분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형식적인 문구였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회사는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편지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프랑스 사회의 큰 이슈가 됐다. 그의 편지가 향한 곳은 프랑스 회사였지만, 그의 메시지가 향한 곳은 프랑스 사회였다.
프레비외의 입사거부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편지는 프랑스어 글쓰기 교과서에서 독창적 표현력을 지닌 좋은 문장 사례로, 병원에서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개된다. 멈춰서 천천히 사고할 줄 아는 한 사람의 용기, 이를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는 한 사회의 포용력이 서로의 가치를 빛나게 만들었다.
프레비외가 재기 넘치는 풍자와 냉소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취업시장에 직면한 청년들의 속내다. 입사거부서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됐다. 최근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된 바 있다. 또한 미국 프로비던스의 RISD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오스트리아 빈의 시립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세계문화의 집에서도 전시되었다.
프레비외는 2014년엔 마르셀 뒤샹 예술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여러 미술학교와 대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참조=책 '입사거부서', 쥘리앵 프레비외 지음. 정홍섭 옮김. 출판사 클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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