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호텔 건설 위해 1721억 매입
서울시 "오래된 건축물 무조건 보존"
필로티 등 개발방식 놓고 답보상태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땅은 곧 돈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에선 특히 그렇다. 땅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인허가 과정은 늘 험난하다. 문화재나 학교 등과 관련한 규제들이 얽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가치가 높은 땅일수록 규제는 더욱 촘촘하다. 이로 인해 도심의 금싸라기 땅이 수년째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중구 소공로 일대 6562㎡ 땅과 7채의 건물이 대표적인 예다. 웨스틴조선호텔과 왕복 5차선 도로를 두고 마주해 있는 이곳은 한국은행까지 이어진다. 1930년대 지어진 노후 건물들인데 겉모습을 보면 에어컨 실외기 줄과 수도관이 어지럽게 노출돼 있다. 건물 입구엔 지난해 12월22일 영업을 종료했다는 안내문과 함께 광고 전단지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외벽엔 오래된 광고판이 찢겨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이 땅과 건물은 부영주택이 2012년 삼환기업으로부터 1721억원에 사들였다. 지상 27층, 850실 규모의 호텔을 짓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부영의 이 같은 계획을 담은 '소공동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 결정(안)'을 통과시켰다. 관광숙박업(관광호텔) 사업계획도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서울시 건축심의위원회의 심의와 건축 허가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총 7개의 건물 중 5채를 시가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라고 권고하면서 사업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사대문 안의 210개 건축물을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사업자는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을 위해 임차인들을 모두 내보낸 후에도 방치되고 있는 이유다.
오래된 건축물을 무조건 보존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정답이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 기술상 건물을 띄워서 보존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면서 "해당 건물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논란의 핵심은 소공로가 갖고 있는 경관을 어떻게 보존할지의 문제"라며 "건물을 들어 올려 필로티 방식으로 하는 건 도시미관을 오히려 해칠 수 있기에 기존 도로 선을 보존하면서 보행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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