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놓친 조선해운 구조조정 진짜 문제…<1> 저가수주
정부가 조선ㆍ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11조원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해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로써 구조조정의 큰 틀과 방향은 잡혔다. 하지만 조선ㆍ해운업의 위기를 초래한 '내부의 함정'을 제거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없고 위기는 반복된다. 이에 '제 살 깎기'식의 저가수주, 불리한 계약관행 등 고질적인 병폐를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1993년 세계 수주량 1위에 올라선 한국 조선업계는 2000년대 들어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호황을 안겨줬던 중국의 고속 성장이 멈추고 유럽이 재정위기로 흔들리면서 조선 수요가 급감했다. 2006~2008년 연평균 70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기록한 세계 선박 발주는 2010년 이후 연간 3000만CGT 수준으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배를 만드는 도크(dockㆍ선박을 건조하는 공간)를 비워둘 수 없어 저가수주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발주 물량이 적다 보니 생존을 건 수주 경쟁에 모든 기업이 열을 올렸던 것이다. 배를 만드는 데는 통상 2~3년 걸린다. 2010년 이후 저가 수주한 물량이 2013년부터 조선사 실적에 하나둘 반영되면서 실적 악화를 키웠고, 조선업 전체를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이는 원가와 기술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제 살 깎기'식 과열된 수주 경쟁을 벌인 결과다.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수주를 따내야 한다"고 압박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원가에 10% 이상의 마진을 붙이는 게 관행이지만 계약이 어려울 것 같으면 이를 1~5% 수준까지 내리기도 한다"며 "사실상 노마진에 가까운 수주는 물론, 어느정도의 손실을 감수한 수주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의 공생을 위해 국내 '빅3'는 물론 조선사 전체가 더 이상 무리한 수주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간 저가 수주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국가경제에서도 손해가 아닐 수 없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통해 정진한다면 조선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 수주를 막되 교각살우(矯角殺牛)를 피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용환 서울대 교수는 "리스크 회피와 수익성만 앞세우면 기업의 수주 의욕을 꺾을 수 있고,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등 후발업체에 시장을 내줘 해외 수주가 급감할 수도 있다"며 "무엇이 저가수주인지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그에 따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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