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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 프리즘] 10년 후 IT세상, 우리 삶은 예측불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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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석준 엽편소설집 '10년 후의 일상'

[아시아경제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10년 뒤라면, 2026년 5월 18일이다. 몇 가지는 확신을 할 수 있다. 광주에서는 대통령까지 참석한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적으로' 부를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이익 밖에 모르는 장사꾼과 '옛날 사람들'이 멈추어 놓았거나 뒤로 물려놓은 나라와 시민의 살림을 멈추거나 뒤로 물리기 이전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수많은 민중이 피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 내가 살아 있을지,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내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결혼을 해서 아이(나와 아내의 손자, 어쩌면 '아이들')를 낳았을지, 나의 소소한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상도 할 수가 없다. 운이 좋다면 강원도 철원 같은 곳에서 산기슭에 달라붙은 작은 밭을 매거나 전라도 어디쯤에서 갯벌을 기어 다니며 조개나 긁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오래 못 본 친구와 (혹시 있다면) 큰맘 먹고 찾아올 손자들을 기다리겠지.
10년 후의 일상

10년 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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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의 일상'이라는 소설집은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표지에는 작은 초록색 활자로 '인공지능 시대가 낳은 발칙한 IT 엽편소설집'이라는 글귀가 인쇄되어 있다. '엽편소설(葉篇小說 또는 葉片小說)'이란 나뭇잎 한 장에 들어갈 정도로 짧은 소설이다. A4용지 한 페인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바닥 만한 지면에 실린다고 해서 '장편소설(掌篇小說)'이라고도 한다. 콩트와 비슷한 분량이지만 극적 반전에 초점을 맞춘 콩트에 비해 깊이 있는 삶의 국면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본격 문학의 깊이를 확보한다.

'10년 후의 일상'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가가 그리는 10년 후의 일상은 우리 상상력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 정도다. 출판사는 책 소개를 이렇게 했다. "이 책은 SF소설은 아니다. SF소설과 IT소설은 과학이 아닌 과학 발전의 예측을 소재로 하고, 허구의 스토리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SF소설은 아주 먼 미래의 과학 발전을 소재로 하여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IT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과학 발전 정도를 소재로 해 제한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몇 곳 맛을 보자. '0.03%'에서는 직장인 세 명이 바닷가에 있는 바에서 업무 회의를 한다. 사무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회사원들의 스마트폰(아직도 스마트폰을 쓴다!)에 '0.03%'란 숫자가 뜬다. 업무용 프로그램이 직장인들의 회사 기여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알려주는 것이다. '점심시간'에서는 직장인이 '점심 메뉴 결정 앱'을 사용한다. '소녀의 기도'에서는 이웃집 소년을 짝사랑하는 소녀가 드론에 선물과 고백 편지를 실어 소년의 집 옥상으로 보낸다. 하지만 드론은 착륙을 거부당한다. 허가받지 않은 드론으로 인한 피해가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쪽. "이번 '최고의 역사 프로젝트 시행'에 관한 나의 투표는 사표가 됐다. SNS에 내 의사를 명백히 밝히긴 했지만 사실 난 비판만 했지 실천한 것은 없었다. 그동안 나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 가는 법만을 탓하고 자신의 의사에 맞는 실천을 하지 않으며 반대 의견인 사람을 비난만 하는 걸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 역시 내가 비판하던 말뿐인 투쟁가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내가 그냥 게으르고 남에게 무심한 이기적인 인간이란 것을 잘 알고 인정할 뿐이다."

소설가는 인공지능이나 IT와 같은 테크놀로지를 부단히 주워섬기지만 소설 속에 독자의 의식을 일깨울만한 충격적인 장면을 매복해 두지는 않았다. 내가 그려보는 10년 뒤의 삶이 현재도 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거기서 거기'이듯이, 소설가가 그리는 미래 역시 시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니 IT니, 심지어 엽편이니 하는 말도 맥거핀(macguffin)일지 모른다. 맥거핀이란 영화에서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가짜 미끼'다. 소설가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나 보다. huhball@


<편석준 지음/레드우드/1만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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