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진희의 전시포커스]가뭄에 비를 뿌리는 '북장사 괘불'의 비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북장사 괘불

북장사 괘불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발생해 아시아 전역으로 전래된 불교(佛敎). '깨달은 자'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국교였던 불교는 조선시대로 들어와 유교에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종교였다. 세속화된 오늘날에도 불교문화는 한국인의 삶과 정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날 때 절에서 49재(齋)를 올리고, 나라에 우환이 생겨 평안을 기원할 때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와 같은 대규모 공동체 의식을 거행한다. 새해가 되면 절을 찾아 기왓장에 소원을 적는 사람들, 수능 날이 가까워질 때마다 사찰 안 마애불(磨崖佛)이나 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불교는 신(神)을 내세우지 않고, 지혜와 자비, 관용과 평등을 추구한다. '깨달은 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맞닿아 있다. 또한 윤회와 생로병사라는 생사관을 갖는다. 깨달음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생과 사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보통 사람들에게 고해(苦海)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구복(求福)'적 성격을 띤다. 중생이 지닌 고통을 듣고 구제해주는 관(세)음보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약사여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 다음 세상에 부처로 나타난다는 미륵불, 서방정토의 주인으로 중생을 천국으로 이끈다는 아미타불 등. 부처(불)가 되기 이전 단계인 보살과 부처의 이름이 다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기 2560년. 오는 15일은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이다. 인간으로 현현한 '석가모니불'의 탄생을 기념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해마다 이즈음이면 평소 만나보기 어려운 사찰 소장 괘불(掛佛)을 공개하고 있다. 괘불은 야외에서 벌어지는 불교의식에서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대형 걸개그림이다. 올해로 열한 번째인 괘불 공개전에는 '경북 상주 북장사 괘불'을 모셨다.

보물 제1278호 '북장사 괘불'은 가로 811.6㎝, 높이 1330㎝다. 석가모니불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과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다. 녹색과 붉은색, 금색이 도드라진 그림에는 광배를 뒤에 두고 중심에 서 있는 부처가 압도적이다. 부처 주변으로는 여러 보살과 제자, 사천왕(四天王), 제석천(帝釋天) 등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도에는 법회(法會)를 주관하는 석가모니불이 대좌(臺座) 위에 앉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비해, 이 불화에서는 서 있는 입상(立像)의 부처로 표현됐다. 야외 법회를 위한 괘불의 기능에 맞게 예배의 주존(主尊)을 화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 있는 부처로 그린 것이다. 서 있는 부처의 도상은 '북장사 괘불'에 처음 나타났으며, 이후 경상북도 지역 사찰의 영산회상도 도상으로 확산됐다.

2001년 '북장사 영산회괘불도'를 걸고 상주 북천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2001년 '북장사 영산회괘불도'를 걸고 상주 북천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원본보기 아이콘

북장사 괘불의 화기에는 1688년 불교 신도들과 승려 165명의 시주와 후원으로 제작되었다고 적혀있다. 이 괘불은 주로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야외에 걸렸지만, 극심한 가뭄이 닥친 상주 지역에 비를 청하는 기우제(祈雨祭)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내용은 상주지역 읍지(邑誌) '상산지(商山誌)'에 나온다. 지난 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장사 주지 서담스님은 "1950년대에도 가뭄이 심해 이 괘불의 사본을 북천강에 가서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낸 적이 있다. 이후 2001년에도 다시 한 번 괘불을 대동해 기우제를 지냈다. 괘불을 걸고 난 이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단비가 내렸다"고 했다. 스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서울에 비가 내렸다.
서담스님은 이어 "이 괘불은 미완성 작품이다. 잘 보면 부처의 오른손이 밑그림만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연기설화가 전해지는데, 신라 때 당나라 스님이 북장사에서 그린 일화가 있다"며 "스님이 사흘 동안 문을 닫은 채 먹지도 않고 괘불을 그리는데, 열세 살 어린 스님이 이를 몰래 엿보니 스님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새 한마리가 화면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만 있더라는 것이다. 어린 스님이 엿보는 것을 눈치 챈 새는 갑자기 입에 문 붓을 놓고 날아가 버렸고, 그림을 확인하니 한쪽 귀퉁이가 완성되지 않았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이 그림을 싣고 읍에서 기우제를 지내니 효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재난에서 구제해주는 관음보살', 조선 1730년. 2015년 구입.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재난에서 구제해주는 관음보살', 조선 1730년. 2015년 구입.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원본보기 아이콘

'병을 고쳐주는 약사불' 조선 1828년. 1909년 구입.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병을 고쳐주는 약사불' 조선 1828년. 1909년 구입.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원본보기 아이콘

조선후기인 1885년, 1886년 제작된 산신도,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인 1885년, 1886년 제작된 산신도, 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원본보기 아이콘

이번 괘불 전시와 더불어 박물관 불교회화실에는 옛 사람들의 염원을 볼 수 있는 불화들이 여렷 모였다. 이 중엔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압수 미술품 중 하나인 '재난에서 구제해주는 관음보살'(1730년작)이 있다. 박물관은 이 작품을 경매를 통해 17억원에 구입했다. 그림에는 넘실거리는 파도와 그곳에서 솟아 오른 바위, 그리고 풀방석 위에 앉은 여성적인 관음보살이 비중 있게 배치됐다. 오른쪽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꽃은 정병이 놓이고 가지 위에는 살포시 파랑새가 앉아있다. 정병의 옆쪽으로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고 있다.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은 '중생들의 고통의 소리(音)를 살펴보다(觀)'라는 의미로 불렸다. 사람이 죽은 후 천국으로 이끄는 이가 '아미타불'이라면, 현재의 고통을 덜어주는 이는 바로 이 '관음보살'이다. 잘 알려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에서도 이 두 불보살이 일반 중생의 불심(佛心)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1904년 화재로 불탄 서울 삼각산 중흥사에 있었던 '병을 고쳐주는 약사불'(1828년작)이라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불화에는 약사불의 정토에서 가르침을 설하는 부처, 설법을 듣는 보살, 사천왕과 제자들이 보인다. 중앙에 앉아있는 약사불은 치료의 상징인 약합을 들고 있다. 이외에도 1839년생인 송모, 김모 부부가 하루 빨리 아들 얻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주해 조성한 '독성도'(1878년작), 수명장수와 자손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긴 '산신도'(1880년대 중반작) 등이 함께 나왔다. 전시는 오는 11월 6일까지.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