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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받으며 정치 떠나는 유인태, 그가 남긴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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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엽기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노무현 정부의 정무수석비서관, 당이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막후의 해결사, 대통령 등 권력자에게조차 쓴소리와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정치인, 민청학련 사건의 사형수였던 유인태(68)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권을 떠난다.

유 의원은 지난 2일 국회본회의에서 19대 국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언대에 올랐다. 이날 테러방지법을 두고서 살풍경이 펼쳐졌던 이날 국회에서 유 의원의 마지막 당부는 큰 울림을 남겼다.
"제가 발언하는데 우리 당이 아무도 없네. 내 또 이런 경우도 처음 보네요." 유 의원은 단상에 오르자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날 유 의원은 못내 아쉬운 듯 자신의 소속정당 의원들이 앉아 있는 본회의장 왼쪽을 쳐다봤다. 당시 더민주 등 야당소속 의원들은 9일간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벌여가며 저지하려 했던 테러방지법이 결국 여당 뜻대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자 항의 차원에서 본회의장을 떠났었다.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의원들만 남아 있는 본회의장을 보면서 유 의원은 "제가 19대 국회 들어서 본회의장 발언대에 처음 서자, 아마 제 삶의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서는 게."라고 멋쩍게 말했다.

실제 유 의원의 말 처럼 그가 본회의 연단에 오르는 것은 이날이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앞서 유 의원은 지난달 더민주 선출직 공직자위원회의 평가에서 하위 20% 평가를 받아 컷오프(공천기회 배제) 대상이 됐다. 이의 신청 없이 곧바로 수용의사를 밝혔던 유 의원은 이날 본회의 연단에 오르는 기분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이상 정치의 중심인 본회의장에 설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농담 등을 섞어가며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임박한 공직선거법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이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못한 채 지역구 의석만 늘리고 비례 의석을 줄이기로 한 선거법 개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다.
"오늘 공직선거법이 좀 있으면 아마 통과가 될 텐데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우리 정치가 지금 이런 식으로 민의가 제대로 반영 안 된 이런 선거제도 가지고 아무리……"

"여기 초선 의원님들 중에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분들도 이 국회 와서 4년만 지나면 다 죄인이 되는 잘못된 풍토, 이렇게 정치 혐오가 심해질 경우 저는 정말 당리당략을 떠나서 이 나라 앞날, 이 민족의 앞날이 암담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계사에서 그렇게 극한 분열과 대립으로 간 민족들 전부 쇠망했습니다.
우리 정치가 제대로 상생의 정치, 서로 타협의 정치를 하려고 그러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고는 그것은 될 수가 없습니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
저는 이제 못 들어오지만 20대에 여기 앉으신 분들 많이 들어오실 텐데 정말로 20대 국회에서는 좀 제대로 된 선거제도를 해 주십사 하는 부탁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유 의원은 테러방지법 표결에 항의해 본회의장을 떠난 같은당 동료들의 빈자리를 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야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 이었는데 여당에게만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 듯 했다. 하지만 그는 19대 국회에서는 실패했지만 자신이 없는 20대 국회에서라도 선거제도를 이제는 정말 바꿔야 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유 의원의 말은 여기에 끝나지 않았다. 유 의원은 "그냥 나온 김에 한 말씀 덧붙이겠다"며 또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형제 폐지였다.

"제가 17대 국회에 175명의 서명을 받아서 사형제 폐지법안을 냈는데 법사위에서 그냥 계류 중으로 끝났는데 이번에 또 여야 의원 백칠십이 분의 서명을 받아서 제출했습니다. 똑같이 지금 상임위에서…… 그게 법사위에서 계류 중이면 도대체 본회의에서 어떻게 한번 토론도 해 볼 기회를 못 가져요. 차라리 부결이라도 시켜 주면 전원위원회라도 소집해서 우리 여기에서 한번, 물론 첨예한 문제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로 토론이라도 해 볼 수 있는데, 아니 의원 175명, 172명이 낸 법안이 상임위에서 그냥 계류된 채 그대로 회기 종료를 맞는다는 거, 이것은 참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유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사형제를 폐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유 의원의 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된 채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 의원은 국회의원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는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 내부의 이견으로 인해 한발도 나가지 못한 채 폐기 수순을 밟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총선이 끝나고 나서 저는 4월에라도 법사위에서…… 전원위원회를 열어 가지고 우리 국회의원 다, 이백구십몇 명이 모여서 한번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라도 만들어 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선이 끝난 뒤. 20대 국회가 시작되기 직전인 잔여국회 기간에라도 사형문제를 다시금 진지하게 검토해달라는 절절한 호소였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수로 응원했다. 테러방지법 등으로 여야간의 극한 대치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단상을 떠나는 유 의원을 붙잡고 이례적으로 "악수 한번 하시지요"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유 의원이 이처럼 사형제도에 강한 집념을 보인 것은 그의 과거와 맞닿아 있다. 유 의원 자신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시절 민청학련 사건에 얽혀 사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가 발언을 했던 본회의에서는 그의 이름이 여러차례 등장했다. 무제한 토론에 참여한 의원들은 과거 국가 정보기관의 문제점을 소개하면서 그 피해자로 유 의원 사건의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유 의원은 결국 19대 국회를 마침과 동시에 현실 정치권을 떠난다. 유 의원은 지난달 24일 컷오프를 통보 받은 직후 "평소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당이 탈당 등 워낙 어려운 일을 겪다보니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미뤄왔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인 선거구제 개혁과 개헌의 소임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유 의원의 컷아웃을 두고서 당안팎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유 의원 같이 큰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단순한 입법활동이나 국회 활동 등의 출석 등으로 성적을 매기는 것이 적정하냐는 지적이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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