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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생으로 산다는 것]짐싸는 입사 2년차 '靑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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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마저 덮친 희망퇴직
경제위기 일상화, 인력 구조조정 상시화
부서장에게 불려간 동기들, 하나둘 사표
내일조차 불투명…20년 장기플랜은 꿈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 입사 1년차. 부장은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뭐하는 곳인지만 제대로 익히라고 했다. 2년차. 조직 얼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부서장이 한 사람씩 불러 면담을 시작했다. 모든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란다. 남의 일로 받아들였지만 옆 부서 동기들이 하나둘 사표를 내기 시작했다. 평소 부서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기들이다. 상사의 막말보다 회사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됐다는 자괴감이 컸다고 동기들은 하소연했다. 그런 동기들이 안타까워 박경호(가명ㆍ29)씨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건 1997년 외환위기부터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컸던 부장급 이상은 자연스레 옷을 벗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희망퇴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퇴직금에 2~3년치 월급을 얹어주는 식으로 퇴직을 유도했다. 과장급도 퇴직 대상이 된 건 이때부터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이젠 대리, 신입사원으로까지 퇴직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구조조정의 칼끝이 미생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30대 그룹의 한 인사담당자는 "과장, 부장급 구조조정은 이미 할 만큼 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인건비는 더 줄여야 하는데 내보낼 사람은 다 내보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미생으로 산다는 것]짐싸는 입사 2년차 '靑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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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명퇴' 논란을 촉발시킨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2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과장급 이상 직원 380명을 내보냈다. 같은해 11월에는 생산ㆍ기술직 희망 퇴직으로 450명이 회사를 떠났다. 희망퇴직에 신입사원을 포함시킨 건 그 이후 벌어진 일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지난 2월과 9월에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이미 희망퇴직을 받다보니 이 계층의 인력이 희박해져서 12월 희망퇴직시 불가피하게 전사원으로 대상을 넓힐 수 밖에 없었다"며 구조조정 대상이 입사 5년차 이하 대리ㆍ사원급일 수밖에 없는 사정을 하소연했다.
'20대 명퇴'가 두산인프라코어 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없다. 기업들은 앞다퉈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은 인건비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상시 희망퇴직을 일상화하고 있다.

사원ㆍ대리급들은 험난한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희열을 만끽하기도 전에 '플랜B'를 고민하고 있다. 중공업 회사 사무직으로 입사한 지 3년차에 접어든 박경호씨는 다시 토익책을 꺼내들었다. 그는 "인사팀에 불려간 뒤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보면 곧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퇴근 후에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명퇴'에 대비하는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안 나간다'고 버틴 선배들에게 돌아온 것은 바닥을 기는 인사고과나 지방 파견이었다. 일부 기업은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 보직을 주지 않고 '역량 향상 교육'이라는 명목의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희망퇴직은 더이상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박경호씨는 "'한 번 취업했는데 두 번이 어렵겠냐'는 선배들의 자조 섞인 조언은 이제 비아냥으로 들린다"고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처지로 퇴직한 20, 30대들이 대거 인력시장에 몰리면 아무리 경쟁력을 높여도 취업은 더 힘들어질 게 뻔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취업준비생'은 6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 회사를 나오면 60만명의 '취준생'과 경쟁해야 한다.

회사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척박한 직장생활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동기들은 제 살길 바빠 연락 한번 하기 힘들다. 힘든 부서일수록 인사평가가 후하다는 소문에 자진해서 고생을 하는 동기들도 늘고 있다. 박경호씨는 "50대까지 이 회사에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퇴직은 40대 넘어 할 고민이라 생각했다. 입사한지 5년도 넘지 않은 우리들이 왜 벌써부터 살아갈 궁리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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