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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여담]'엘리엇 사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증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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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삼성물산 과 삼성물산 이 전격 합병 사실을 알린 5월의 마지막 주. 양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우선 한 일은 다름 아닌 여의도 증권가 '마와리 돌기'였다. 두 CFO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물음표를 던진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찾아다니면서 '잘 봐달라'는 식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 자리에서 한 대형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때까지만 해도 등장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엘리엇'의 주장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성물산의) 상사와 건설 부문의 가치는 마이너스라는 뜻인가요? 향후 누군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까칠한 질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CFO는 예상이라도 한 듯 묵묵부답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엘리엇이 혜성처럼 나타나 삼성그룹과 주변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시각은 분분하지만 삼성 측의 당혹스러움만큼 엘리엇이 '꽃놀이패'라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토종 자본을 위협하는 외국계 '먹튀' 세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있지만 사실 증권가에서는 엘리엇의 공격적인 행보에 남몰래 응원을 보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엘리엇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자본시장을 과도하리만큼 우습게 여긴 삼성왕국의 앞날이 기대된다"고 비꼬았다.

국내 기관 투자자의 속내는 엘리엇이 대신 싸움을 걸어줘 고맙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형국이 사뭇 재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이 상황을 즐길 수만도 없는 게 국내 기관들의 현실이다. 속으로는 삼성이 자본시장을 이용해 자행하고 있는 승계 작업이 못 마땅하지만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겉으로 드러내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눈치를 살피며 기관 중 최대 '큰 손'이자 맏형격인 국민연금공단의 결단을 기다리고만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는 반대 의견을, 제일모직에는 찬성 의견을 던지는 게 논리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지만 99% 찬성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양사 합병에 찬성을 던지기 위한 명분 만들기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몸을 사리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있다. 최근 한화투자증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엘리엇과 삼성 사태에 대한 리서치센터 분석 보고서를 내지 않는 한 연구원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연구원은 CEO에게 "그룹 구조본에 보고도 해야 하고, 준비 작업에 한 달여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된통 꾸지람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다른 증권사에서도 눈에 띄는 리포트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 자본(삼성)이 시장을 이기려 드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주주총회 의결권 자문기관 중 한 곳인 대신경제연구소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권고안을 낼 지 여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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