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한 대형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때까지만 해도 등장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엘리엇'의 주장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삼성물산의 지분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성물산의) 상사와 건설 부문의 가치는 마이너스라는 뜻인가요? 향후 누군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까칠한 질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CFO는 예상이라도 한 듯 묵묵부답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엘리엇이 혜성처럼 나타나 삼성그룹과 주변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시각은 분분하지만 삼성 측의 당혹스러움만큼 엘리엇이 '꽃놀이패'라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토종 자본을 위협하는 외국계 '먹튀' 세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있지만 사실 증권가에서는 엘리엇의 공격적인 행보에 남몰래 응원을 보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엘리엇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자본시장을 과도하리만큼 우습게 여긴 삼성왕국의 앞날이 기대된다"고 비꼬았다.
국내 기관 투자자의 속내는 엘리엇이 대신 싸움을 걸어줘 고맙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형국이 사뭇 재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이 상황을 즐길 수만도 없는 게 국내 기관들의 현실이다. 속으로는 삼성이 자본시장을 이용해 자행하고 있는 승계 작업이 못 마땅하지만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겉으로 드러내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눈치를 살피며 기관 중 최대 '큰 손'이자 맏형격인 국민연금공단의 결단을 기다리고만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는 반대 의견을, 제일모직에는 찬성 의견을 던지는 게 논리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지만 99% 찬성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양사 합병에 찬성을 던지기 위한 명분 만들기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