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71, 사진)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작가다. 오늘날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 일색인 현실에서 황석영 소설은 서사의 묵직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 중에서도 '여울물 소리'(창비 출간)는 재미와 감동, 교훈을 주는 황석영 소설의 말년작이다. 이 책은 지난해 사재기 파동으로 스스로 절판한 이후 오류를 바로 잡아 한결 정결한 느낌을 준다. 이와 함께 오디오북 '더책 특별판'으로도 내놓았다.
황석영은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존인물들"이라며 "역사적 사건의 재생을 피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말로 지명이나 실제 인물의 이름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이 소설은 당대 현실속으로 들어가 민초들의 이야기에서 역사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는 이야기다. 특히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민요, 연희 대본, 언패소설 등 다양한 소재를 곁들여 재미를 더 한다.
소설속 주인공은 이야기꾼(전기수)이자 "민중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혁명가"(최원식 문학평론가)다. 주인공 이신통은 서자로 태어나 전기수로 유랑하다 천지도(동학)에 입도, 혁명에 참가한 후 쫓기는 신세로 전국을 떠돌며 활빈당에 들어간다. 결국 이신통은 활빈당원으로 활동하던 중 총을 맞고 죽는다. 또다른 주인공 박연옥은 관기와 시골 양반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로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 수 없는 사내와 그런 사내의 세상을 가슴에 품기 위해 세상을 떠돈다. 이같이 혁명과 사랑을 버무려낸 황석영의 유려한 입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황석영식 서사는 비단 이야기가 120년전에 머물지 않고 우리 시대와 비교해 과연 당시보다 역사가 진일보했는 지를 반문케 한다. 지금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권위가 버젓이 날뛴다. 도처에서 억울한 죽음도 넘친다. 권력의 유착, 부정부패도 더 견고해졌다. 그런 면에서 여울물 소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생생한 이야기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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