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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수광부는 물을 건넜나"‥고대공연예술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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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음악극 '공무도하'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현재 국립국악원이 준비중인 음악극 '공무도하 - 저 물을 건너지 마오'(11월21∼3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는 신화와 일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우리 공연예술의 원류를 찾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 작품을 위해 우리 시대 연극과 국악의 거장인 이윤택 연출가, 안숙선 명창(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비롯,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등은 물론 전국 4개 국악원이 하나로 뭉쳤다. 그 작품은 음악극 '공무도하'다.

'공무도하'의 모티브는 최초의 고대시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4언 4구체의 서정시로 알려진 '공무도하가'다.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그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찌 할꼬."
공무도하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노인(백수광부)이 백발을 풀어헤친 채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늙은 광부의 아내가 쫓으며 애타게 남편을 부르다 남편을 따라 물속에 몸을 던져 죽는다는 설화로 이뤄져 있다. 음악극 '공무도하'는 최초의 시 '공무도화가'가 문학이 아니라 애초에 연극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인윤택 연출가

인윤택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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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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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사가 왜 100년인가 ? 그건 서양연극의 이식사다. 우리 연극은 5000년이 넘는다. 적어도 3000년은 된다. 우리의 연극은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로 정리하기 전까지 이름 없는 형태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문학의 한 갈래로 문학사에 편입돼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우리 연극이 3000년이 넘었다는 증거가 '공무도하가'다. 세상에 연극 없는 민족이 어딨나 ? 서구 연극이 우리 연극사인가 ? 우리 공연 예술의 원형을 찾는 작업은 꼭 해야할 숙제다."

이윤택 연출가는 "부여의 영고 등 우리 민족의 제천의식은 춤과 노래로 이뤄져 있다"며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처럼 형식을 갖추지 않았으나 '마당'이라는 열린무대에서 춤과 노래, 이야기, 놀이 형식으로 즉흥·신명·소통의 연극을 펼쳐 왔다"고 설명한다. 이어 "'사방치기'를 보라. 인간의 욕망과 망상을 하늘에 흩뿌리는 동작속에 우리 고유의 놀이 정신이 남아있지 않는가"고 반문한다.

"공무도하가의 현대적 의미는 본래 공무도하가가 하지 않은 이야기, 말하자면 강을 건넌 이후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 백수광부는 서구 신화속의 주신이자 예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 견줄만한 존재다. 공무도하에 담긴 비극적 서사에서 우리는 현대적 재해석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는 분명히 공연 형식일 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서연호 고려대 명예교수도 "공무도하가가 연극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한나라 채옹의 '금조', 진나라 최표가 편찬한 '고금주', 조선 후기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도 이 노래가 금과 공후를 타면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 민족의 연극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으며 공무도하가의 변주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세계를 빚어보자는 것이 이번 공연제작팀의 의도다.

음악극 '공무도하'는 두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이뤄진다. 첫번째 이야기는 이윤택 연출가가 1980년말 실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한 사내가 이사 간 아파트 동호수를 기억하지 못 해 아파트 단지를 밤새 지쳐 천변 건너 강둑에 주저 앉는다. 혼이 빠진 사내는 강둑에 등불을 밝힌 포장마차의 아낙을 만나 이승을 뒤로 하고 먼 옛날의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전생으로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는 소설가 김하기가 1996년 8월 연변의 북한식당에서 식사하던 중 여종업원이 소개해준 택시기사와 두만강을 건너 연변으로 갔던 일화를 소재로 한다. 극 중 김작가는 연길에서 북한 여자 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네살배기 아들 순남까지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며 혼인을 한다. 그러나 어느날 순나는 사라지고 김작가는 순남을 데리고 도강, 북한 땅으로 그녀를 찾으러 간다.
공무도하가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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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광부나 한 사내, 김작가는 체제와 제도 밖에서 현실적 비극을 겪는 이들이다. 누군가의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야한다. 따라서 이번 제작팀들도 공연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도강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묻는다. "강을 건넌 이후의 삶은 무엇이며, 죽음이 있다해도 신천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

음악극의 작창 구성 및 주연배우로 나서는 안숙선 명창은 "이번 작업은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라는 과제를 안고 한국 공연예술의 원류를 찾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며 "우리 공연예술의 역사성과 신화적 의미를 동시에 복원, 공무도하가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은 판소리를 극적 서사 중심에 놓고 정가와 서도소리, 경기민요, 구음, 범패 등 한국의 소리체계를 음악극의 코러스와 아리아로 구성,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국립국악원은 연초부터 2개월의 기획단계를 거쳐 음악극 무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3월께 이윤택 연출가와 만나 국악을 국악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이에 고대시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6월 대본초안, 8월 배우 선정, 9월 본격적인 대본 연습에 돌입했다.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소리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전국 4개 국악원(서울, 남원, 진도, 부산)의 단원을 참여시켜 다양한 전통 음악과 춤을 결합시켰다"고 설명한다.

한편 음악극 '공무도하' 공연은 이달 21∼30일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 펼쳐진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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