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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의 뉴스읽기]교황은 우리에게 진짜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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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메신저이지 메시아가 아니다."

교황신드롬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마지막엔 저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하게 했다. 그는 만병통치약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모든 용서의 권능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 흥행처럼, 혹은 붉은 악마처럼, 혹은 광우병 집회처럼 1백만명을 광화문에 모이게 한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교황의 인격의 완전체에 있었을까. 아니다. 우리 내부에 그 이유가 있었다. 저 인파와 저 행렬은 우리의 아픔, 우리의 갈등, 우리의 다급함, 우리의 목마름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에게 고해성사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빠짐 없이 말하고 그에게 억울하고 답답하고 아프고 서러운 상황을 구구절절이 밝혔지만, 그는 다만 그것을 들어주었을 뿐 묘책을 제안해주지는 않았다. 묘책이라니...그런 것 따위는 세상에 없음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일흔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오래된 구절을 되뇌이며 떠났을 뿐이다. 그는 남북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겨레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며 그것을 우리가 잘 이뤄낼 수 있도록 기도를 해준 것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는 깊은 힐링을 얻었다. 풀리지 않는 갈등의 보이지 않던 실마리를 발견한 듯도 했다. 그것이 외부에 있지 않음을, 그것이 멀리 있지 않음을,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문제이며 자신 속에 있는 메시아만이 그 해결의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 일을 했다. 입은 들은 것을 공감하며 표현했을 뿐, 오로지 귀만을 열었다. 훌륭한 말로 빼어난 언변으로 아름다운 구절로 사람들을 우리를 사로잡은 게 아니라, 저 맑은 침묵과 따뜻한 눈길과 부드러운 손길로 간구하는 심령을 건드렸을 뿐이다. 가난하고 겸손하고 따뜻하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우린 알아들었다. 잠든 사람은 춤출 수 없다는 말에서, 우린 깨어있을 준비를 했고, 독백이 안되려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말에서, 우린 소통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반성했다. 모든 게 우리 안에 있었고, 이미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거기에 있었기에, 그는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었고 설득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 그가 떠났다. 아시아에 남긴 카톨릭의 아름답고 귀한 자취들을 확인하고, 한국 청년들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눈매를 읽고 갔을 것이다. 이제 저 짧은 황홀을 거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새삼 그 '어른'이 빠져나간 빈 자리에서 허탈과 환멸을 겪어야 할 것인가. 그는 '우리 안의 빛'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 안의 가능성과 우리 안의 능력을 일러주었다. 우리가 본 그가 진짜 성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배달해준 훌륭한 메신저였기 때문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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