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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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지난 4월 3일 밤 11시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초조한 심정으로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울린 전화벨.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든 이 회장의 귀로 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순간 이 회장은 두 팔을 번쩍 치켜 올렸다. 그의 오른쪽 손목에는 팔찌 하나가 매어져 있었다.


이날 코오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첨단 합성섬유 '아라미드(Aramid)'를 둘러싼 미국 화학회사 듀폰과의 1조원대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지난 2009년부터 무려 5년여를 끌어온 소송에서 대역전극을 연출한 것이다. 앞서 듀폰은 2009년 방탄복의 재료인 '아라미드'가 자사 제품 '케블라'의 기술을 베꼈다며 손해배상과 생산 및 판매 금지를 요구했다. 듀폰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코오롱인더스트리 자기자본의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 회장이 '대기업 회장님'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팔찌를 차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올 초부터다. 벌써 8개월이 넘었다.


이 회장은 1월 2일 과천 코오롱타워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전 임직원이 긍정의 노를 저으며 한 몸으로 호흡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하며 팔찌 패용을 제안한 뒤 본인부터 팔찌를 착용했다. 일체감과 동질성을 갖자는 의미에서다. 지난해 배지를 착용하는 이른 바 '배지경영'이 시작됐으나 팔찌 착용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코오롱 전 임직원도 팔찌를 차고 있다. 시무식 이후 개인당 1개씩 받은 이 팔찌는 코오롱 임직원이라면 1년 내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패용해야 한다. 만약 팔찌가 끊어질 경우 이를 가지고 와야 교환해준다.


팔찌뿐만 아니라 배지도 착용해야 한다. 이번 배지는 이 회장이 제시한 올해의 경영지침 '더하고 곱하고 나누기'를 상징화한 것으로 배지에 새겨진 '네모', '동그라미', '세모'는 코오롱 임직원의 다양성과 함께 각각 '마음', '열정', '서로 함께'의 앞 글자를 표현한다.


코오롱 특유의 '배지ㆍ팔찌경영'은 소통과 감성을 중시하며 시각적 이미지에 친숙한 젊은 직원들에게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그룹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배지의 편리한 패용 방법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남자 직원은 재킷 상단뿐만 아니라 니트 재질의 넥타이에 달기도 한다. 여자 직원들은 액세서리처럼 활용해 단추를 대신하거나 스카프에 매치하는 등 패션 감각을 발휘하기도 한다. 팔찌 관리 노하우도 게시판을 통해 공유됐다.


이 팔찌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생산하는 인공피혁 '샤무드(Shamude)'로 만들어진 '실팔찌'다. 머리카락 굵기의 1/1000의 초극세사로 만들어지는 샤무드는 사용분야에 따라 다양한 두께와 색상으로 생산이 가능하고 내구성과 통기성, 쾌적성, 보온성을 갖춰 산업소재 뿐 아니라 패션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실팔찌'는 브라질 남미 축구선들이 승리를 기원하며 팔에 실을 감고 경기에 나간데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재미있는 속설이 따라다닌다. 실팔지를 늘 하고 다니다가 언젠가 닳아서 매듭이 저절로 풀리거나 끊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소원팔찌'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팔찌 효과 때문일까? 결과적으로 팔찌 착용 이후 코오롱은 듀폰과의 소송을 원점으로 돌리며 형세 역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항소심 이후 아라미드 설비를 풀가동 중에 있으며 해외 판매도 확대하고 있다. 소송으로 구매를 주저하던 고객사들이 다시 사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6~7월에는 주문이 증가해 그동안 쌓아놨던 재고도 소진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본인을 'Mr. CVC'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이는 '최고 비전 창조자(Chief Visionary Creator)'란 말로 기업 리더는 비전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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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그룹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나는 스스로 CEO(최고경영자)로 불리기보다는 CVO(최고 비전 책임자ㆍChief Visionary Officer)나 CVC로 불리길 원한다"며 "회장은 회사들의 경영에 관여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이에 필요한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비전 메이커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코오롱그룹은 듀폰의 재심요청으로 조만간 소송이 재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팔목에 찬 팔찌가 풀어지며 이 회장이 다시 임직원들의 비전을 만드는 'Mr. CVC'로 나서게 될 순간이 오게 될 것인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안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장(전무)은 "조만간 재심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1심에서 반영이 안 된 코오롱의 주장과 증거를 준비하고 있다"며 ""1심 재판부가 재구성된 이후 서로 주장하고자 하는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 중으로 재심이 이뤄지면 과거 1심에 비해 기간은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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