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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구름에 묻히다, 운장(雲葬)(127)

최종수정 2014.08.15 07:28 기사입력 2014.08.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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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이라 그런지 비행기를 타면 늘 신기하다. 조그만 기창(機窓)으로 생애에서 가장 크고 넓은 것을 본다. 우리가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저 조금 위에 드리운 구름덩이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구름 위를 산책하며 놀랍게 깨닫는다. 십여년전 동남아시아 여행을 떠날 때, 처음 그 구름을 만난 뒤 얼마나 감격했던지, 저 구름 속에 포옥 싸여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조장(鳥葬), 풍장(風葬)도 좋지만, 구름 속에 묻히는 운장(雲葬)도 행복하겠다 싶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데, 어찌 죽는 생각부터 했을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일이 그것이기 때문일까. 구름바다를 걸어다니거나 구름 사이를 헤집으며 날아다니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더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시커먼 먹구름의 뒤통수가 갓 빨아 말린 무명솜보다 더 포근하고 보얀 것이란 걸 발견했을 때, 우린 늘 세상의 반쪽 밖에 보지 못하는 평생반맹(半盲)임을 다시 실감한다.

우리가 기도할 만한 존재가 하늘에 있다는 생각은 어떠한가. 그 하늘은 무엇인가. 하늘은 대지의 유한(有限)을 초월한 무한을 보여주고 있기에, 우린 거기에다가 절하고 비는 것일까. 신은 하늘에 사는 것일까. 신의 거주지를 하늘로 설정한 순간부터 우리의 상상력은 경직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우리가 바라본 하늘은 고작, 비행기보다 아래에 있는 구름들의 놀이터일 뿐인데, 그 구름 위에 다시 천공이 있고, 그 천공 위에 다시 다른 천공이 있을 것인데, 우린 하늘의 옆구리살을 붙잡고 하늘이라 믿어온 것이 아닌가. 저 구름들은 지상에서 서로들 만났을까. 천상에서 다시 얼싸안고 흰 계곡과 흰 산과 흰 들판을 이루며 어루부비는 저 순간이야 말로 구름들에겐 현세가 아닌가. 우리가 죽어서 하늘에 올라올 동안, 그들은 죽어서 잠시 땅으로 쏟아져 내리고, 다시 윤회하여 이렇듯 하늘로 귀환하는 것이 아닌가.

구름 위를 날아가노라니, 삶이 덧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거창해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 혹은 부스러기로 흘러다닌다는 것, 사라지거나 생겨난다는 것. 그 만상의 행각들이 자잘하고 가엾다. 옛사람들이 초월을 생각하는 것은 저 조무래기들의 끝없는 조리돌림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을까. 욕망하는 것, 행복해지는 것, 혹은 가없는 비탄, 억울함, 거대한 권능과 부귀. 구름의 영토에는 그것들이 모두 무화 혹은 휘발하고, 떠다니는 것의 깊은 향수(鄕愁)에 자신을 맡긴 침묵의 유랑자들이 평화로운 얼굴로 끝없이 걷고 있었다. 우리가 초월한다는 것은, 저 구름의 대열에 말없이 끼고자 하는, 그런 꿈이었던가. 눈을 꿈벅이며 오래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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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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