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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저주의 숫자(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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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라디오에서 어린이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태권동자 마루치'에는 악당인 파란 해골 13호가 등장한다. 왜 하필 13호였을까. 1970년에 발사 실패로 인류에게 충격을 주었던 아폴로 13호의 악몽을 거기에 담은 건 아니었을까. 13이 드리운 불길한 상징이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증폭되어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 13에 관한 믿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노르웨이신화로 기원을 잡기도 한다. 12명의 신이 초대된 신들의 잔치에 불청객인 13번째 손님이 등장했다. 분쟁과 악의 신인 로키였다. 축제는 갑자기 난장판이 되고 이 와중에 가장 존경받던 신 발더가 죽음을 당했다. 13이라는 숫자가 불행을 초래한 최초의 스토리라고 한다. 기독교의 여명기에 유럽을 떠돌던 13 징크스는 강화되기 시작했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이가 13명이며 13번째 손님은 바로 유다였다.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로 꼽힌다. 골고다에서 예수가 죽은 날(실제로는 4월3일이라는 학계 주장이 있었다)이라고 오랫 동안 알려져왔기 때문이다. 1980년엔 동명의 공포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태평로 삼성 본관 빌딩에는 4층과 13층이 빠져 있는데, 고 이병철 창업주가 기피하는 숫자의 층을 아예 없앴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선 13이라는 숫자를 주소로 쓰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복권에 13을 빼버렸다. 그런데 미국에선 초기 13개주를 기념하기 위해 이 숫자를 애용한다. 지폐 뒷면 피라미드는 13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고 흰머리독수리는 13개의 열매와 13개의 잎이 달린 올리브 가지, 그리고 13개의 화살을 양발로 움켜쥐고 있다. 독수리 머리 위엔 13개의 별이 떠 있다. 백악관은 13일의 금요일에 지어진 건축이라고 한다. 윌슨대통령은 국제회의나 파티를 할 때 늘 13호 좌석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국제선 항공기의 13번째 좌석이 없고, 고층건물에도 13층이 거의 없다. 얼마 전 미국에서 13과 관련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프리미엄급 아파트 분양을 했는데 13층만 분양이 되지 않았다. 분양사무소에서 13층을 12-B층으로 바꿔 내놨더니 순식간에 팔렸다고 한다.

13과는 대조적으로 7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운으로 인식되는 숫자이다. 그리스의 솔론은 인간의 생애를 7년씩 끊어서 설명했다. 첫 7년은 젖니 대신 영구치가 나는 기간, 두번째 7년은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기간, 세번째 7년은 남자에게 수염이 나는 기간, 네번째 7년은 인생의 절정기, 다섯번째 7년은 결혼 생활에 올인하는 기간, 여섯번째 7년은 분별력이 무르익는 기간, 일곱번째 7년은 이성(理性)이 인간을 고결하게 만들 수 있는 기간, 여덟번째 7년은 인간성이 완성되는 기간, 아홉번째 7년은 공정함과 온유함의 경지에 이르는 기간, 열번째 7년은 죽음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는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쉽게도 장수시대를 예견하지 못한 탓인지 열한번째 7년부터는 제대로 설명해놓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여자가 두번째 7년에 성적으로 여자가 되고 일곱번째 7년에 폐경이 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옛 바빌로니아 신전은 7층으로 만들었다. 하늘이 그곳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이 세상을 만든 뒤 안식을 취하는 날이 일곱번째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 짐승이 들어간 뒤 7일 뒤에 홍수가 땅을 덮고, 그 땅에 물이 걷히고 노아는 7일을 기다린 뒤에 비둘기를 내보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속죄의식을 치를 때 피를 일곱번 뿌렸다고 한다. 결혼식도 7일 추모제도 7일이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십자가의 예수가 적을 용서하라고 말한 횟수도 일곱 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세상에 나온 날이 7일이다. 로마 건국설화를 보면 일곱번째 올림피아 대제가 열린 첫해에 나라가 세워졌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결혼식에 7명이 거들게 되어있고 병이 나면 일곱 집에서 모은 음식을 환자에게 먹인다. 일곱 종류의 양념과 일곱 종류의 절인 채소를 먹기도 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할 때 보면 신체의 일곱 부분(얼굴과 두 팔과 두 무릎과 두 발)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집트에서는 천국에 가는 길은 7개가 있다고 믿었고, 일곱 마리의 소가 함께 간다고 믿었다. 불교에서 부처는 7년간 고행을 했고, 명상 수행을 하기 전에 보리수를 7바퀴 돌았다. 극락은 일곱 개의 하늘로 되어 있고 깨달음에 이르려면 7개의 수행이 요구된다.
숫자가 우주의 생성과 운행의 비밀을 담고 있다고 믿은 사람은 피타고라스였다. 만물의 기본은 숫자로 되어있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1은 점이며 2는 선이며 3은 입체라고 했다. 우리가 1차원, 2차원, 3차원이라고 분류하는 기틀을 그가 마련해준 셈이다. 또 1은 선(善)이며 빛이며 질서라고 보았고, 2는 악, 어둠, 무질서로 보았다. 이를 통합하는 신성(神性)과 완전성이 3이라는 숫자이다. 3은 하늘의 완전숫자인 반면 4는 땅의 완전숫자라고 한다. 공간의 4방과 시간의 4계절로 표현된다. 3과 4가 합하면 7이 되니, 하늘과 땅의 완벽함이 만나 바로 럭키세븐의 속신(俗信)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7월7일(한국날짜) 777의 이름을 지닌 아시아나여객기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77명의 한국인 탑승객이 타고 있었다고 하니, 7이 일곱개 거듭되는 기묘한 우연이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키웠다. 행운의 숫자가 너무 많이 겹쳐서 재앙으로 변한 것일까. 그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놀음일 뿐일까.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고였으니, 숫자가 정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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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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