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상무(尙武)'는 남을 짓밟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홍익인간의 인본정신으로 학문과 예술을 꽃피웠던 것처럼 우리 민족은 무(武)를 문(文)으로 제어했다. 아니 '무' 자체가 문과 한 몸이었다. '무(武)'는 무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戈)을 거두는(止) 법을 아는 것, 무력을 쓰되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명량'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그 같은 '참 무인' 이순신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라고 자책했다. 그건 죽어간 자기 진영 병사들에 대한 연민이며, 부하들을 살상의 업을 짓게 내몰아야 하는 장수로서의 회한이었다. 어쩌면 그 자책은 자신에 의해 수장된 일본의 병사들에게도 또한 미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는 정유재란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에서 자신의 죄업을 씻듯 자살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회한이 많았고 눈물이 많았다. 그러나 눈물이 있었기에 그는 강했다. 연민이 있었기에 그는 불굴이었다.
진짜 무인, 진짜 지휘관의 길은 지금도 우리 군에 많이 남아 있는 군국주의 일본군대의 호전성과 절대복종주의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순신의 눈물을 보며 배우기 바란다. 거기에 우리 군이 진짜 강군이 되는 길이 있을 듯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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