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매년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을 받은 정부 부처 사업이 연간 350건에 달한다. 국비 4000억원을 포함해 1조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 전국 자전거길 14개 구간 중 10개 구간은 1시간에 자전거가 10대도 채 지나지 않는다. 도심 자전거길 일부는 자전거 통행량이 거의 없어 차도가 되버린 곳이 대부분이다.


지자체들이 연이어 만들고 있는 생태 공원중 상당수는 수요 예측이 잘못돼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지어놓고도 운영비 문제 때문에 개장조차 못하는 곳이 많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연구에 써야 할 돈을 청사 신축과 직원들의 수당으로 사용했다. 새로 부임받은 도지사들 일부는 거주 중인 관사를 십억원대의 세금으로 다시 지으려다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라도 정부 곳간이 줄줄 새는 모습은 매일 목격된다. 국세청에서 징수하지 못한 부가세 미납액은 지난해 2조원에 육박한다. 황제노역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재산이 한푼도 없다며 벌금을 일당 5억원짜리 노역으로 채우려다 형집행정지로 30억원만 탕감 받고 나머지 세금은 냈다.


허씨처럼 일당 1억원 이상의 황제노역을 선고 받은 사람이 지난 5년 동안 10여명 더 있었다는 사실은 더 허탈하게 한다. 탈세를 해 1인당 평균 389억원의 벌금을 평균 224일의 노역을 통해 감면 받았다. 이러다 보니 고액 세금 체납자일수록 돈이 없다며 국세청을 피해다니기 일쑤다.

일반 시민의 눈으로 봐도 정부 곳간이 줄줄 새고 있는데 정부는 기업들 곳간만 넘보고 있다.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그 대상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들이 경영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갑작스러운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돈이다. 일부는 자산으로, 일부는 현금으로 갖고 있다. 정상적인 회사 경영에 필요한 돈 중 하나다. 몇몇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자기 곳간에 빈 곳을 기업들의 곳간을 털어 채우려 하고 있다. 대부분 사정이 괜찮은 대기업 얘기다.


사내유보금을 쌓아두지 말고 가계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정부 논리에 대해선 큰 반감이 없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전 정부에서 감면해준 법인세 인하 정책이 현재 기업들이 거액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논리는 재계 입장에선 다소 황당하다. 탈세 등의 불법을 저질러 모아 놓은 돈도 못 걷어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외화를 벌어들인 기업들에게 예전에 정부에서 혜택을 줬으니 이제 돌려 달라고 말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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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으로 투자와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에는 정부가 실제 내수 경기 진작이 아닌 현 정부 차원에서의 숫자놀이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낸 사례다. 1주당 수십, 수백만원씩 하는 대기업 주식을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갖고 있겠는가. 결국 외국계 대주주와 주식 부자들의 재산만 늘어나고 일반 가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표만 좋아지는 셈이다.


사내유보금 과세시 해외투자분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글로벌 경쟁 시대에 맞지 않다. 인건비, 환율 등의 문제로 해외 투자 비중이 높아진 재계에는 치명타다.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이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투자를 한 기업에 패널티를 주는 셈이다. 새는 곳간 채우려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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