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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14-① 이불 들고 全南 내려가 月3회 마을회관서 자는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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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 Story #14. 금배지의 지역구 일편단심

A의원이 조기축구회 현장을 방문해 절하고 있다.

A의원이 조기축구회 현장을 방문해 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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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와서 자나 문 벌컥 열고 확인하는 주민도…
발도장·눈도장 찍고 민원해결, 돼지머리 절까지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국회의원에게 지역구와 여의도는 양날의 칼이다. 지역에 발도장을 찍지 않으면 선거철에만 얼굴을 내미는 기회주의자로 몰리고, 지역구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하면 '당신이 시ㆍ구의원이냐'는 비아냥을 감내해야 한다. 다음 선거를 위해선 지역 유권자와의 만남도, 본회의와 각종 위원회 등 국회 활동도 중요하다. 국회의원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이유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지역 주민을 만나는지 동행해봤다.
◆형님·동생하며 지역축구 행사장 다니기=보통 지역구의 행사 일정은 지역 사무실을 통해 잡힌다. 지역구 사무실에서 들어온 요청을 취합한 일정 담당 보좌진이 국회 회의 일정 등을 고려해 국회의원에게 보고하는 식이다. 다른 일정과 겹쳐 의원이 직접 가지 못하는 경우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이때는 축사를 보내거나 보좌진을 대신 참석시키기도 한다.

막상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면 '좋은 소리'보다는 '나쁜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A의원을 따라나선 한 지역구 행사장.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A의원의 면전에 비난의 화살이 꽂힌다. 농반진반 '○○형 요새 변했다', '얼굴 보기 힘들다', '어깨에 힘 들어갔다'는 등의 얘기가 쏟아졌다. 억울해도 따져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걸 아는 A의원. 대신 웃으며 농을 친다. "아이고 형님, 어제 형수님과 싸우셨어요? 난 형님 자주 보는데 왜 만날 나 못 보셨데." 나름 재치있게 상황을 넘긴다.

서울이 지역구인 A의원은 이날 아침부터 지역 행사장을 찾느라 분주했다. 첫 일정은 이 지역 축구연합회 행사였다. A의원은 행사 시작 30분 전에 일찌감치 행사장을 찾았다. 시간에 맞춰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사람 변했네"부터 "거봐 어깨에 힘 들어갔다니까" 등의 핀잔의 강도가 더 세진다고 한다.
지역구 행사에서는 국회의원이라고 주최 측의 마중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날 A의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홀로 황급히 축구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A의원은 흩어져 있던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안녕하세요, ○○○입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본 행사에서도 주인공은 역시 A의원이 아니다. 이날 사회자는 지역 축구연합회 회장을 가장 먼저 소개한 뒤 구청장(권한대행)과 구의회 의장을 소개했다. A의원의 차례는 이들 다음이었다.

A의원은 "동네에서는 구청장과 구의장이 우선"이라며 "이걸 가지고 의원들이 매번 싸우는데 싸우는 사람이 바보죠"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회자는 이날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때문에 행사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A의원은 돼지머리에 절을 세 번 하고는 황급히 행사장을 빠져 나왔다.

인근에서 또 다른 행사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A의원이 카니발 차량을 타고 도착한 곳은 한 초등학교. 행사장에 5분여 늦은 A의원은 이번에도 뛰어서 단상에 올랐다. 이곳에서도 A의원의 소개는 다른 내빈들보다 뒤였다. 마이크를 잡은 A의원은 짧은 축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축사를 길게 하는 것도 안 돼요. 누가 오래 말하는 걸 좋아하겠어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죠." 지역구 행사장을 돌며 생긴 나름의 노하우라고 귀띔한다.

다음으로 A의원이 찾은 곳은 지역사무실. 11시에 방문하기로 한 민원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5분여를 기다리자 민원인이 방문했다. "제가 최근에 낸 의료 법안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주중에 방문하시라고 했더니 평일엔 진료를 봐야 하신다니 어쩌겠어요. 일요일에 봐야지."

◆전남이 지역구인 의원은 이불투어=전라남도가 지역구인 B의원은 주말을 이용해 자신의 지역구를 찾는다. 김포공항에서 50분간 비행기를 타고 광주공항에 내려 다시 차로 2시간30분. 여의도 국회 사무실에서 출발하면 총 4시간여가 걸리는 긴 여정이다.

B의원은 되도록 지역구를 자주 찾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워낙 멀다 보니 많이 내려간다고 해도 한 달에 세 번 남짓이라고 했다. 그래서 B의원은 한 번 내려가면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고.

그는 원거리 지역구의 주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역에 내려갈 때면 아예 마을회관을 숙소로 이용한다. 지역구 사무실에서 공수한 이불을 들고 다녀서 B의원 보좌진 사이에선 '이불 투어'로 통한다. 2012년 총선 당시 유세를 다니며 생각한 아이디어다.

B의원은 "선거 때는 짧은 기간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 마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야 20분 정도여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내 할 말만 하고 오기도 빠듯했다"며 "'선거 때만 되면 얼굴 보인다'는 얘기가 안 나오게 하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명 '이불투어'는 지역민의 저녁 식사 준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아예 그 시간을 피해 늦게 시작한다. 해당 마을의 이장을 포함해 주민들과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이 자리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는 마을의 둑을 높여 달라는 민원부터 농업정책과 쌀 직불금 문제, 태풍 피해 구제 등 지역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때론 마을의 젊은이들과 밤늦게까지 대포잔을 부딪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처음에 B의원이 마을회관에서 자고 간다고 하니 못 믿는 사람들도 많았단다. "새벽에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서 나가봤더니 한 할아버지가 논에 가시면서 이 사람이 진짜 자고 있는지 확인하시더라구요." B의원은 이날 아침 유권자의 매서운 눈을 독대했다.

A의원이 아파트 민원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A의원이 아파트 민원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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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현장 민원 챙기고…볼링행사까지=지역구 활동은 발 도장, 눈도장을 찍는 일에 그치지 않고 지역 민원 해결도 중요하다. A의원은 이날 오후에는 터널 공사로 아파트에 균열이 갔다는 민원에 따라 현장을 방문했다. A의원은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인사를 한 후 곧장 주민들의 안내에 따라 현장을 둘러봤다.

주민들은 연신 "터널공사를 하면서 폭약으로 산을 뚫는 바람에 아파트가 금이 가고 군데군데가 내려앉았다"며 아파트 외벽과 지하주차장, 집안 등을 보여줬다. 1시간여 동안 현장을 둘러본 A의원은 70여명의 주민들 앞에서 "듣던 것보다 직접 둘러보니 심각하다"며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끝장을 보겠다. 아파트에 대한 실사를 실시하고 결과 나오면 구조 진단과 안전진단 등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A의원은 약속대로 나흘 뒤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아파트 균열과 관련해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주최했다.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 회의에는 아파트 시공사와 터널 시공사를 포함해 SH공사, 주민대책위원회, 구청ㆍ구의회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아파트 균열에 대한 안전검사 실시와 균열의 원인 규명 등이 합의됐다. 주민들이 약 2년간 백방으로 뛰어도 해결되지 않던 민원이 국회의원의 호출 한 번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순간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이어진 5개의 지역일정을 마친 뒤인 2시 무렵이 돼서야 A의원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나마 다음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6시까지다. 이번엔 지역 볼링동호회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기독교인인데 주일에 교회도 못 나가요. 보통 주말에는 결혼식에 다니고, 결혼 시즌이니 더 바빠지네요."

◆의원직 상실 大法 판결 나면 이튿날 방빼는 소리 요란…19대 국회서만 15명 나가

국회 의원회관 420호가 주인을 잃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사무실의 주인인 성완종 전 의원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형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선고 이후 업무는 정지됐지만 보좌진들은 어제(30일)도 여전히 출근했다. 사무실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이 의원실에서 나온 각종 서적들이 종이 박스에 담겨 있었다.

요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은 곳곳이 비어 있다. 선거에 출마하거나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내려놓으면서 사무실도 제 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다. "거의 다음 날 바로 방을 빼죠. 특히나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에는 더 그러는데 얼마 전 의원직을 상실한 한 의원실은 선고 다음 날 바로 문 닫고 짐을 정리하더라구요."

빈 사무실 맞은편에 근무하는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 사무실은 언제 정리하느냐고 묻자 "대(代)가 바뀌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방선거 때가 가장 많이 의원실이 빈다"며 "자리를 옮겨갈 곳이 많은 여당이 야당보다 의원직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 6ㆍ4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10명 중 7명이 여당 의원이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의원직 사퇴 또는 상실 등이 결정되면 7일 이내에 사무실을 빼야 한다.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인데 대개 사무실 정리는 신속하게 이뤄진다. 보통 다음 날 정리를 시작한다고 한다.

짐이 많은 다선 의원의 경우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 사무실 정리를 마치면 국회사무처에서 의원 문패를 떼고 문을 잠가 버린다. 사무실의 위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의원회관 사무실 안내도의 이름에도 하얀색 스티커를 붙여 이름을 가린다.

이처럼 이런저런 사유로 금배지를 반납한 의원은 15명으로 현재 국회의원은 285명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정 전 의원을 비롯해 서병수ㆍ유정복ㆍ박성효ㆍ김진표ㆍ이낙연 전 의원 등 10명은 지난 6ㆍ4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성 전 의원을 비롯해 배기운ㆍ김선동 전 의원은 지난달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했다. 앞서 이재영ㆍ신장용 전 의원도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당선이 무효가 되거나 의원직을 잃었다.

때문에 오는 30일 재ㆍ보궐 선거는 전국적으로 15명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미니 총선'이 될 전망이다. 경기도 수원의 경우에는 4개 선거구 중 '수원갑'을 제외한 3곳의 의원을 이번에 다시 뽑는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재ㆍ보궐 선거일은 공석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전년도 10월1일부터 3월31일까지의 사이에 사유가 확정된 때에는 4월 마지막 수요일에 실시한다. 이 외의 경우 10월 마지막 수요일에 실시한다. 하지만 이번 재ㆍ보궐 선거일정은 지방선거 일정과 겹치면서 7월30일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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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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