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실속형 '무빈소 장례' 확산
"80만원 홍보하더니 500만원 청구"
필수항목 뺀 미끼 광고에 옵션 강매

올해 3월 부친상을 치른 박모씨(71)는 유언에 따라 무빈소 장례를 결정했다. 수년간 월 300만원이 넘는 병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해온 그에게 '80만원대 무빈소 패키지'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그러나 장례를 마치고 청구된 최종 금액은 500만원에 달했다. 업체 측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예우는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고가의 수의와 유골함 업그레이드를 거듭 권한 결과다. 박씨는 "유족 처지에서 비용 문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서울 시내의 한 장례식장 입구. 최근 이곳 장례식장을 찾는 유족 절반가량이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를 선택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서울 시내의 한 장례식장 입구. 최근 이곳 장례식장을 찾는 유족 절반가량이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를 선택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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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1인 가구 확산으로 빈소를 차리지 않고 절차를 간소화한 무빈소 장례가 실속형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불투명한 비용 구조와 과도한 추가 비용 요구 등 부작용이 잇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업체의 상술로 유족들이 이중고를 겪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접수된 장례 관련 민원은 551건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 장례 절차가 간소화된 2020~2021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평균 130건 이상 발생했다. 2022년에는 133건으로 전년 52건 대비 2배 넘게 폭증했다. '계약에 없던 비용 추가 청구' '특정 용품 구매 강요' 등 호소가 주를 이뤘다.


민원 사례를 들여다보면 무빈소 장례의 허술한 가격 공시를 지적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한 유족은 "상담 중 가격표에 '수의1·수의2' 식으로 번호가 적힌 표만 보여주며 선택을 종용받았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 장례를 경험한 류모씨(69) 역시 "미끼 상품은 저렴하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앞세우며 강권하는 고급 수의는 한 벌에 500만원이 넘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장례 과정에서 비용이 불어나는 배경에는 업계의 구조적 불황이 자리 잡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상조업체는 2016년 214곳에서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급감한 뒤 올해 76곳으로 줄었다. 상조업계 관계자는 "최소 인건비와 기본 용품을 고려하면 무빈소 장례여도 최종 금액은 250만~300만원 수준이 정상적"이라며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현실성 없는 초저가 광고로 유족을 유인한 뒤 현장에서 옵션 판매로 이익을 남기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80만원이라더니 돌아온 청구서는 500만원…두 번 우는 '무빈소 장례' 유족 원본보기 아이콘

장례 현장에서도 이 같은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동대문구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지난달에 장례 15건을 치렀는데 절반은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였다"며 "무빈소 장례는 빈소 대관료나 음식 판매 수익이 거의 없어 사실상 돈이 되지 않는 구조이고, 불경기 속 운영 유지를 위해 용품 판매 등에서 수익을 보전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온라인에선 65만~90만원 안팎의 가격을 내세우며 무빈소 장례를 과도하게 홍보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견적을 내면 안치실 사용료와 입관료, 화장장 비용 등이 필수 항목이란 명목으로 별도 청구된다. 운구 차량을 이용하면 기본 거리 외 추가 요금과 할증이 붙어 총액이 커지는 구조다. 영등포구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자택에서 사망하면 시신 이송·처리 비용만 70만원가량 추가되는데, 현실적으로 100만원 안팎에 장례를 치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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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간소화는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비용 구조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단순히 가격을 깎는 게 아니라 비용을 사전에 명확히 제시하는 가격표시제와 추가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표준가격제 도입이 시급하다"며 "유족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건전한 장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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