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밥' 20년만에 시의원 도전 쓴잔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국회 밥'을 먹은 지 20년을 꽉 채운 A씨.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국회 입성 초기에 '내가 모시는 의원의 말이 곧 법'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베테랑이 된 A씨는 잔뼈가 굵었다. 2008년 초선인 K의원을 보좌할 때는 A부터 Z까지 의정활동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챙겨야 했다는데. 하루는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모 의원이 A씨가 보좌하던 K의원의 부친을 언급하며 폭력의 상징으로 비유했다고. K의원은 언짢았지만 대응방법을 잘 몰랐는데 이때 A씨가 나섰단다. 신상발언을 급히 작성해 K의원에게 부리나케 뛰어가 '신상발언을 하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언론은 일제히 'K의원 뿔났다' 등 신상발언을 대서특필했다고. K의원은 "베테랑 보좌관을 뽑았더니 척척 해결해준다"며 보좌관을 추켜세웠다. A씨에겐 어깨가 으쓱하던 순간이었다.
A씨가 20년 동안 보좌한 의원은 총 6명. 신한국당, 한나라당, 친박연대, 새누리당 등 대부분 보수 진영이긴 하지만 소속도 성향도 가지각색이었다. 모시는 의원의 정치생명에 따라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A씨는 보좌관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남은 것은 사람이라고 꼽는다. A씨는 이사할 때마다 방 한 켠에 쌓아둔 라면박스 19개부터 챙긴다고 한다. 이 라면박스 들어 있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동안 받았던 명함이라고. 한 박스당 1만5000여개의 명함이 들어간다고 치면 20년 동안 30만명가량의 사람을 만난 셈이다. 의원일정 등을 메모해 둔 수첩도 100여개나 된다.
쉰 살이 다 돼가는 A씨는 아직 전세를 살고 있다. "돈을 못 모았어요." 목소리가 작아진다. 사정 모르는 사람은 '4급 공무원이면 연봉도 두둑하고 공무원연금도 받지 않느냐'며 부러워한단다. 외벌이라 세금 떼고 나면 빠듯하다는 A씨. 아내와 올해 고3인 딸, 그렇게 조촐한 식구여서 그나마 교육비ㆍ생활비 부담이 적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대신 사람들 만나는 데 쓰는 술ㆍ밥ㆍ커피값 지출이 만만찮다고 한다.
A씨는 지난 6ㆍ4 지방선거 광역의회의원에 출마했다. 오랜 보좌관 생활로 잔뼈가 굵은 그가 시의원으로 직접 정치 일선에 첫발을 뗀 것이다. 그러나 46%의 득표율로도 2위에 그쳐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년 경력의 보좌관 '짬밥'도 정치 입문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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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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