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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녀'에 대한 발칙한 재해석…19금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최종수정 2014.06.13 16:26 기사입력 2014.06.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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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에서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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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옹녀,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절을 한다. 여인의 이름은 '옹녀(甕女)'. 우리가 아는 '변강쇠와 옹녀'의 그 옹녀 맞다. 무슨 사연인지 얼굴에 슬픔이 한가득하던 옹녀가 드디어 입을 연다. 열다섯에 얻은 첫 서방부터 스무 살에 얻은 다섯째 서방까지 줄초상을 치러야했던 기구한 사연이 판소리 가락과 함께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이뿐 만인가. 옹녀를 쳐다보거나 슬쩍 건드린 마을 사내들도 시름시름 죽어나가기는 마찬가지. 평화롭던 평안도 월경촌이 순식간에 과부촌이 될 지경에 이르자 보다 못한 동네 이장이 옹녀를 쫓아낸다. 사주에 청상살(靑裳煞, 젊어서 남편을 잃을 살)에 상부살(喪夫煞, 과부가 될 흉한 살)까지 겹쳐서 그렇다는데, 과연 옹녀는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국립창극단이 첫 '18금' 창극으로 내놓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첫 장면이다. "'정력남 변강쇠'에만 맞춰져 있던 시선에 점을 찍고, 새로운 '옹녀'의 시대를 펼치고자" 하는 기획의도에 맞게, 작품의 주인공은 옹녀다. 옹녀는 흔히 음기가 세고, 색을 밝히는 '변강쇠의 여인' 정도로만 알려져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부살때문에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열녀로 재탄생한다. 결말도 다르다. 옹녀 곁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거나 죽어나가면서 끝나는 비극적인 원작과 달리, 작품에서 옹녀는 자신의 팔자를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룬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에서 옹녀와 변강쇠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에서 옹녀와 변강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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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전'의 명예회복 프로젝트?

'변강쇠'는 정력(精力)이 강한 남성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강쇠'라는 이름처럼 강한 쇳덩어리의 기운을 지닌 사내다. 이 같은 특징때문에 변강쇠전을 음란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변강쇠와 옹녀가 서로의 은밀한 부분을 바라보면서 노래하는 '기물타령'은 늘 외설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변강쇠전이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와 함께 판소리 여섯마당을 이루는 중요한 작품이란 점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단순하게 남녀의 풍기문란한 행위에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시대 하층 유랑민들의 궁핍했던 생활상과 비애도 찾아볼 수 있다. 원작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당시 암울했던 유랑민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유실 직전의 판소리 '변강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선보이고자 마련한 무대가 바로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다. 앞서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도 "변강쇠전은 그동안 영화 등에서 지나치게 성적인 묘사만 강조됐지만 유랑민들의 아픔이나 장승 전설 등 우리 전통에서 부각돼야 할 문화가 반영돼 있는 작품"이라며 "그동안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변강쇠 이야기를 해학적 창극으로 재구성해 변강쇠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칼로막베스', '리어외전' 등 작품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고전을 비틀어왔던 고선웅 연출이 작품을 맡아 "봉건제 농경사회에서 성적으로 열성인 여인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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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은유와 상징으로 꽉찬 무대, 낄낄대는 객석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한 옹녀는 드디어 운명처럼 변강쇠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여기저기 떠돌며 잡일로 어렵사리 모은 돈을 변강쇠가 도박과 술로 탕진해버리자, 옹녀는 변강쇠를 타일러 아예 산속에 정착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작품은 세상에 둘도 없는 색골남녀의 만남과 사랑을 허풍스럽고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좁디좁은 외길 한가운데서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능청스럽고 익살맞다. 지리산에 들어간 변강쇠와 옹녀로 인해 온 산 봉우리가 흔들리고, 장승들마저 옹녀의 매력에 빠져 활활 타오를 지경이다. 무대 뒤 영상에서는 성적인 코드가 가득하고, 음악은 민요 굿 가요 왈츠 등의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무엇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옹녀'를 음녀와 열녀의 상반된 매력을 모두 가진 인물로 긍정한다. '옹녀'가 왜 드센 팔자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배경을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해 설명하는 '옹녀 탄생 내력'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여러 배우들이 연기한 각양각색의 장승들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옹녀' 역은 국립창극단의 김지숙과 이소연이 맡았고, '변강쇠' 역은 김학용과 최호성이 맡았다. 11일 개막해 7월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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