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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You raise me up' 울려 퍼지는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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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한달…유가족에 주민들까지 후유증 심각

▲세월호 희생자들이 다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다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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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경기)=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13일 오전 11시30분께. 경기 안산시 고잔1동에 위치한 단원고등학교에서 노래 소리가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몇몇 남학생들이 따라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를 일으켜 세워줘.' 친구를 잃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운동장에서는 체육시간인 듯 운동하는 여학생들의 말소리가 간간히 새어 나왔다. 단원고 학생들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교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말소리만 거리에 울려 퍼졌다. 고요한 거리에 그 소리만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고요함 속에 '아우성'이 있었다. 단원고 정문 밖,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과 편지들이 쏟아내는 아우성, 그리고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지역 주민들의 할 말을 잃은 표정 속에 감춰진 슬픔의 아우성이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한 학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

▲세월호 사고로 숨진 한 학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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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한 달이 가까워지는 13일, 안산은 아직 4월16일에 멈춰 있었다.
이날 오전에 찾아가 본 희생자 전모(17)군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세탁소는 커튼으로 내부가 가려진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용무 있으면 전화 하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든 지 오래된 듯 창문가엔 먼지가 얕게 내려 앉아 있었다.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수북하게 세탁소 문을 장식하던 편지들도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게 앞 전봇대에 걸린 노란 리본만이 스무날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군의 어머니와 같은 상가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안정애(50ㆍ여)씨는 "이틀 전 전군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표정이 어두워 말조차 걸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참사 이후 슬픈 소식만 계속되면서 동네 주민들은 말을 잊었다. 주민 김권수(가명ㆍ50대)씨도 "얼마 전 알고 있던 한 학생의 장례식에 다녀왔다"면서 "영정사진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눈두덩이 퉁퉁 부어버린 부모를 보니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아 고개만 숙이고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산책 겸 공원에 나와 있는 어르신들을 제외하면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반평생을 안산에서 살았다는 이영환(76)씨는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지금까지 이런 참담한 분위기는 처음이다"라며 "아직도 주민들은 만나기만 하면 세월호 사건과 실종자 얘기만 나누고 있다. 회복하려면 세월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한 중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밀가루 반죽만 애써 다듬던 식당 주인은 "학생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식사하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장사가 거의 안 된다"면서 "동네가 완전히 멈춰버린 느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산 지역의 한 심리상담소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정부ㆍ구조 당국에 대한 분노와 뜻 모를 슬픔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 상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고잔1동에서 30년을 살았다는 주민 한명석(66)씨도 "주민들이 말이 없는 건 정부도, 개인도 믿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럴 때 일수록 유가족ㆍ실종자 가족들을 보듬을 수 있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참담한 사고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전문가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공동체, 친지 들이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식사를 거부하는 유족들에게 밥 한 술이라도 떠서 건네며 공감해주거나, 장례나 수습 산적한 일들을 돕는 것, 지역공동체가 희생자의 형제ㆍ자매를 돌봐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참사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위한 심리상담 및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소영 세월호 침몰 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 홍보팀장도 "피해 학생이 많은 고잔1동, 와동 일대는 지역사회전체가 타격을 입어 공동체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라며 "동네마다, 마을마다 찾아다니면서 공동체 회복과 유가족 지원을 도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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