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고은 '무제시편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고은 시집 '무제시편'은 607편, 1016쪽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두 계절동안 쓰여진 시다. 고은은 "제목 안에 시의 내용을 흡수시켜 버리는 오랜 관습을 버리고, 각 시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무제시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며 "시가 명제 혹은 고유명사에 속한 진술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20일 묵직한 시집을 들고 독자 앞에 나타난 고은(사진)은 "55년 동안 시적 자취를 허용한 모국어와 조국, 조국 밖에 숱한 언어, 문인들에게 감사한다"며 비장한 헌사를 바쳤다. 그러면서도 "근근한 작품을 들고 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다"고 송구스러워 했다.
"지금은 시가 무력한 시대다. 그 무력함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시는 5000여년 이상 장대한 역사 동안 흥성했다. 이제 지구상에서 나는 시의 형제들과 시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더불어 남은 시간동안 시를 기억하게 하는 일들을 벌여 나갈 작정이다. 시의 죽음 ! 시를 더이상 읽지 않는 세상에서 무력함이야말로 나의 운명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것처럼..."
그리곤 잠시 고은은 무제 시편 3, 4번을 읊었다. 유럽 문인들은 고은의 시 낭송에 대해 "몸짓과 표정, 육성의 깊이 만으로도 다른 언어의 사람들마저 울릴만한 소통의 힘을 지녔다"고 설명한 적 있다. 그런 평가가 아니더라도 그의 육성은 표효하듯 실내를 장중하게 울렸다.
"하기사/채마밭 쑥갓, 상추 한포기도/다 그런/전심전력의 삶이러라/이런 숙연한 삶 가녘에/내 삶은 송구스러운 더부살이의 삶이러라/가을이여/바로 이어지는 굶주리는 내년의 봄이여" (무제 시편 4 중 일부)
누가 고은더러 더부살이같은 삶이라고 칭하겠는가 ? 고은은 낭송 말미에 "실은 부끄러워서 금방 이자리 들어서기 전에 소주 두병을 비웠다"고 고백했다. '그가 부끄러운 정도의 삶이라니...'
불가의 구도자에서 민주투사,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만행은 올 봄 유럽, 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여름녘 수원 광교산 자락에 이르렀다. 광교는 지난 30여년간 "어제 그제 그대로/그냥 시인"으로 "날마다 절정"이었던 안성시대를 접고 "또 하나의 해설픈 시작을 위하여"(안성이여 안녕) 잡은 터전이다.
"내년 베를린시에서 체류하며 창작하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왔다. 또한 파리 일부 대학에서 강의 맡아달라는 요청도 있다. 라틴아메리카도 초청이 있어 가봐야 한다. 베를린과 시카고 문학축제에도 초청이 이뤄졌다. 지금 새로 거주한 터전과 창작에 집중해야할 지 고민이다. 다만 아주 호흡이 긴 시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고은의 고민은 머지 않아 하나의 지점으로 결정될 듯 하다. 그의 여정이 비단 정착하며 살아가는 농경민과는 판이한 탓이다. 고은문학의 오랜 시어들이 '배', '새', '바다'로 가득차 있 듯 "내 문학이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낯선 꿈과 집이라는 두개의 모순이 이룬 로드무비"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결국 고은은 어디든 또 떠날 것이다. 마치 고은 문학이 모국어를 넘어 새로운 언어와 민족들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무제시편 전체가 이르는 발길은 종횡무진이다.
그러면서도 비록 떠나게 된다면 "그건 나의 말년을 허락해준 수원 광교산에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고 걱정스러워했다.
신작시집 '무제 시편'(창비시선 출간, 20일)은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을 낸 지 2년 만이다. 이번 시집은 총 607편, 1016쪽이라는 그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더구나 이 엄청난 시들은 고작 반년 만에 씌어졌다.
고은의 창작열은 식을 줄 모르고 오히려 폭발하듯 분출, 압도한다. 이번 시들은 광활한 시공간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유와 유장하고 분방한 언어로 이뤄졌다.
시집은 전작 '무제 시편'과 '부록 시편'으로 구성돼 있다. 총 539편에 달하는 '무제 시편' 은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전작 시편들이다. 올 봄부터 가을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곳곳을 오가는 여행과 체류 동안 쏟아져 나온 것이 '무제 시편'인 셈이다.
'무제 시편'을 통해 시인은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시정신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고은은 이번 시 작업이 "유성우가 밤낮을 모르고 퍼부어 내렸다"고 회고한다. 그런 초인적인 창작은 사유의 경계를 허용치 않는다.
"감히 나는 내가 흑조(黑潮)임을 선언하노라/내가 물 골짝 개울이 아니고/허허벌판 난바다를 휩쓸어/나의 길 한 마당을 이룬 흑조임을 선언하노라/감히 나는 달의 맹방임을/새삼스러이 선언하노라"(무제시편 3 일부)
그리곤 "이놈의 결과주의/이놈의 근본주의/이본의 실용주의..."(무제시편 390)을 다 버리고 "세상 최악인 것인 이데올로기"((무제시편 105)를 단호하게 배격한다. 나아가 일찌기 고은이 '바람의 사상'에서 "시의 깊은 골짜기에 남겨진 모든 둔사들을 불태워 버리고", "은유의 나약함에 길들여지지 말고 직설로 돌아가라"고 했 듯 그의 발길은 무한한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고은의 탐색과 여정이 한국문학에 이르는 길이니 굳이 잡을 필요가 없을법 하다.
이제 그의 문학이 세계화돼 있음을 본다. 과거 민족적 정서를 추구하던데서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지니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젊은 시절, 고은 시가 지닌 은유와 묘사 대신 관념, 상징은 더욱 뚜렷해졌다. 70년대 "연기 한번 고구려 고구려 힘차게 솟아오른다"(연기 한 가닥)거나 "다음 날 비가 왔습니다. 비 오자 나뭇잎 컹컹 짖으며 푸르렀습니다"(죽은 개)에서 보여준 시적 유희는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아주 멀리 가버린 까닭이다. 그게 우리들에게 '축복일까 ?' '불행일까 ?'
한편 지난 2005년 11월 노벨상의 본고장 스웨덴 언론들은 당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였던 고은 시인의 스웨덴어 시집 '만인보와 그외 시들'(아틀란티스, 한인자·카롤라 레르멜린 역) 출간에 맞춰 특집호를 실는 등 깊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당시 스웨덴의 유력 종합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뎃(Svenska Dagbladet)'은 시집 '만인보와 그외 시들'에 대해 '신화 같은 서사시에서 떠오른 시선집'이라고 평했다. 더불어 "만일 스웨덴 한림원이 시 부문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한국시인 고은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이 적격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다른 언론들은 '군산의 제왕', '한국의 드라마틱한 현대사 그 자체'로 고은을 칭하는 등 온갖 찬사를 보였다. 그해 고은은 오르한 파묵(터키), 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스웨덴)와도 만나 교우를 나눴다.
국경과 언어를 넘는 고은 문학은 1958년 '현대문학'지에 '폐결핵'(조치훈 추천)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33년 8월1일~)다. 소설을 쓴 적도 있으나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은은 학창시설 나환자 출신의 시인 한하운 '황톳길'을 보고 전율, 시를 쓰게 됐다고 여러번 술회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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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돼 10년간 참선과 방랑 등 만행을 펼치며 시를 썼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임했다. .
1974년 펴낸 '문의마을에 가서'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을 담아 허무와 절망 등 탐미적인 세계를 다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후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며 민주화 투사로 거듭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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