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시비 해결 위해 보너스 25억원 포기한 英 샘레이들로 CEO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고객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그래서 올해 현금 보너스를 받지 않겠다.”
최근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영국 전체가 들끓자 이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린 주인공은 브리티시 가스의 모기업이자 영국 최대 에너지 회사인 센트리카의 샘 레이들로 최고경영자(CEO·57·사진 위)다.
그는 지난해 총 500만파운드의 보수를 받았는데 이 가운데 약 150만파운드가 현금 보너스였다. 한국 돈으로 자그마치 25억4538만원이나 되는 거액이다. 보통 사람은 평생 만져보기 힘든 거액이다.
그렇지만 브리티시 가스가 물가상승률의 세 배가 넘는 9.25%의 요금인상을 결정해 온 영국 사회가 들끓자 고객 신뢰회복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레이들로 CEO는 변호사로 일하다 1981년 미국의 에너지 회사 아메라다 헤스에 입사해 20년간 근무하다 여러 석유회사의 임원을 지낸 영국 에너지 업계의 산증인이다. 그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회장을 역임한 크리스토퍼 레이들로 경의 아들이다.
레이들로 CEO는 런던에서 열린 영국산업연맹(CBI) 연례회의에서 한 기조 연설에서 “에너지 분야에 대한 신뢰는 사상 유례없이 낮다”면서 “고객 신뢰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레이들로 CEO는 요금 인상 시비로 회사와 에너지 업계의 명성이 실추된 만큼 업계 대표들은 정면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에너지 산업계는 태풍의 눈 속에 있다”면서 “기업은 투명성을 높여 요금 산정 방식을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공급업체 변경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레이들로 CEO는 이어 센트리카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다. 그는 수만 명의 엔지니어가 고객 가구를 방문해 고객의 문제를 풀어주고 있다"면서 “저는 올겨울 고객들이 요금을 낼 수 있게 돕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브리티시 가스 고객의 절반 이상은 135파운드의 요금 할인 외에 60파운드의 특별 할인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이들로 CEO는 그러나 “자회사 브리티시 가스에 900만명의 고객을 둔 센트리카는 요금 인상으로 폭리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업부문에서 얻은 수익으로 에너지 소매가격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센트리카의 가스 탐사 사업은 한때 브리티시 가스의 ‘캐시 카우’로 각광받았지만 지난해 1억3000만파운드의 손실을 냈으며 전 세계 비즈니스의 영업이익률은 5.9%지만 비판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수익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설득했다.
레이들로 CEO는 “지난 몇 년간 비용을 3억파운드 줄였다”면서 “앞으로 비용절감이 생기면 요금 청구서의 사회 및 환경 부분에 반영할 것”이라며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레이들로 CEO는 이어 총리가 추계보고서에서 환경세를 일반 세금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면 요금인하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약속했다. 그는 “세금만큼 인하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대규모 에너지 사업자들에게 환경세를 물리고 있으며 에너지 회사들은 이를 고객 에너지 요금에 합산해 청구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도매가격이 오르고 전기 가스 배관망 사용료가 오르자 에너지 업체는 요금을 크게 올렸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한시세인 환경세를 일반 예산에 편입시켜 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내부에서 검토해왔다. 다만 업계가 세금 인하의 혜택만 받고 요금인하를 하지 않을 경우 정부와 소비자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염려도 하고 있다.
따라서 레이들로 CEO의 약속은 정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그는 “가계가 심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마치 정상인 듯 생각하는 것은 사려 깊은 보수위원회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