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교과부 지시대로 역사교과서 고친 출판사에 책임 못 묻는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출판사 등이 이른바 ‘좌편향 논란’ 역사교과서를 저작자 동의 없이 뜯어 고쳤더라도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설령 위법하더라도 저작권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김모(55)씨 등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공동저작자 5명이 금성출판사와 사단법인 한국검정교과서를 상대로 낸 저작인격권 침해정지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저작자가 출판계약에서 행정처분을 따르는 범위 내에서의 저작물 변경에 동의한 경우 설사 행정처분이 위법하더라도 당연 무효라고 보아야할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이상 그 행정처분에 따른 계약 상대방의 저작물 변경은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전제했다.
대법원은 이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수정지시가 당연 무효라고 보아야할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이상 그 이행을 위해 금성출판사, 한국검정교과서가 교과서를 수정해 발행·배포한 것은 저작자들이 동의한 범위 내라고 할 것이어서 교과서에 대한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2008년 10월 한국검정교과서를 상대로 금성출판사를 포함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들에 대한 일부 내용 수정을 권고했다.
앞선 교육인적자원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자 이후 통일부, 국방부 등이 교과부에 수정요구사항을 제출한 탓이다.
저작자들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자 교과부는 다음달 금성출판사를 상대로 수정지시했다.
저작자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지 말라고 통지했음에도 출판사가 임의로 교과서를 수정하고 교과부 승인을 받아 인쇄·배포하자, 저작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이듬해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저작자들의 동의나 승낙없이 교과서를 임의로 수정하여 한국검정교과서를 통해 발행·판매 및 배포하는 행위는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금성출판사는 공동저작자들에게 각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은 다만 한국검정교과서의 경우 교과서 수정에 관여한 바가 없으므로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대한 고의·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진 2심은 그러나 “금성출판사는 교과부의 수정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이어서 임의로 교과서를 수정했다고 할 수 없고, 출판계약 및 검정신청 당시의 동의를 통해 저작자들은 교과부의 적법한 수정지시가 있을 경우 그에 따르기로 했으므로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할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공동저작자들은 앞서 2001년 금성출판사와 교과서 출판계약을 맺으며 저작자 요구 외 교육부 지시에 따라 교과서 및 지도서 내용을 수정·개편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한편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공동저작자 가운데 3명이 “교과서 수정명령을 취소하라”며 교과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선 “교과부가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심리해 절차상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했음에도 원심은 이를 다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 사실상 교과부 수정명령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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