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연구가 이병찬 "오방색 구현이 내 과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곱고, 깨끗하고, 담백하다. 우리의 색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부족하고 어렵다. 청, 홍, 황, 흑, 백. 중국에서 건너온 '오방색'이 우리 색으로 변화, 발전하면서 고스란히 비단, 한지, 양모에 물들어 있다. 화학염료가 아닌 100% 천연염색이라야 이런 맛이 나온다. 천연염색을 30년간 연구해 오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병찬(사진, 여ㆍ82)씨를 지난 9일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났다.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지적인 풍모와 낭랑한 목소리에서는 젊은이들 이상의 열정이 넘쳐난다. 51세의 늦은 나이에 천연염색 공부를 시작한 그는 지금도 연구와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천연염색에 입문하기 전 이씨는 외국계 무역회사, 일본항공 등에서 근무했다.
1978년 천연염색의 세계에 첫 발을 들였을 때 그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국내에서 천연염색 전문가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 몇달 간 염색공부를 하러 다녀오기도 했지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우리 염색을 연구하기란 독학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씨는 "은퇴 후 새롭게 무얼 해볼까 고민하다가 가볍게 결정한 것이 '천연염색'인데 이토록 끝없는 여정이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천연염색은 식물은 물론 매염재(媒染劑)도 천연재료를 써야 했다. 식물원을 찾아다니고, 고증자료를 탐독하며, 학자들을 만났다. 산천을 돌아다니며 꽃, 나무에서 채취한 염료를 모았다.
식물을 삶아서 우려낸 물로 천을 염색하고 백반으로 염착해 말리는 것이 천연염색의 공정이다. 하지만 원하는 색을 얻는 염료를 구하는 건 기약이 없는 일이다. 아침에 염색한 색깔이 저녁이 되면 변해버린다. 인내만이 제대로 된 색을 구현할 수 있게 한다. 얼마나 염색에 몰두했는지는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수많은 '염색노트'가 대신 말해준다.
이 씨는 "연구가 녹록치 않았다. 생활도 어려워져 관두려고 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1990년 15회 전승공예대전에서 그의 '천연염색실'이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박물관과 대학에서 그를 불러줘 제자도 가르치게 됐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 색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의궤에 나오는 궁중에서 썼던 색이 바로 '오방정색'이라고 본다. 우리 색의 기조가 되는 오방색이다. 염료가 나라마다 다르니, 같은 색깔도 색감이 다른 거다. 그 오방색을 구현하는 것이 늘 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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