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양대 산맥 잇는 조계산 굴목이재 옛길 6.8km를 걷다

송광사와 선암사 사이, 재너머 그 절집 매화가 반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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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여행전문기자 조용준 기자]겨울을 앓고 난 마른가지에 꽃을 피운 홍매화가 봄 비에 몸을 떤다. 각황전 돌담사이로 고개를 내민 연분홍빛 자태가 단아하고 곱다. 숲향 그윽한 편백나무 숲길은 맑고 푸르다. 계곡은 우렁차게 봄을 토해내고 대웅전 예불소리에 길을 걷고 예불소리에 길을 맺는다.


전남 순천에 가면 조계산(884.3m)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 산자락엔 한국불교의 양대 산맥인 선암사(仙巖寺)와 송광사(松廣寺)가 깃들어 있다. 선암사가 동쪽 둥지요 송광사는 서쪽 둥지다.

이 두 사찰을 잇는 고갯길이 있다. 굴목이재다. 조계산 8부 능선을 걸어 사찰로 드는 길이다. 순천의 남도삼백리길 중 하나로 '천년불심길'이다. 선암사와 송광사 스님들이 오가며 도반의 우정을 나눴고, 이 길을 따라 꽃가마를 탄 승주의 처녀가 낙안읍성 마을로 시집을 갔던 길이다.


굴목이재는 두 개다. 선암사에 가까운 고갯마루는 선암굴목이재, 송광사 쪽은 송광굴목이재로 불린다. 굴목이재는 6.8㎞ 남짓으로 서너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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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 지난 주말. 선암사를 들머리로 삼아 굴목이재를 걸었다. 절집으로 드는 진입로는 측백나무, 전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가 울창하다. 부도밭과 전통야생차체험관을 지나자 승선교(昇仙橋ㆍ보물 제400호)가 날아갈 듯 계곡에 걸려 있다. 그 뒤로 강선루(降仙樓)가 의젓하다.

선암사는 곱게 늙은 절집이다. 875년 도선(道詵)이 창건한 태고종의 본산으로 아늑하고 정갈하다.


절집을 유명하게 만든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토종 매화인 선암매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홍매와 청매가 아늑한 절집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다.


각황전 돌담길엔 늙은 매화나무 수십 그루가 눈을 감고 좌선을 하고 있다. 붉은 홍매화,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화, 옥양목처럼 흰 백매화가 저마다 등불을 매달았다. 그 향기가 온 절 마당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추위로 꽃이 덜 피어 예년만 못하지만 한 송이만으로도 감동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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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매화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뒷깐'이다. 우리나라 사찰 재래식 해우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시인 정호승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한 바로 그 해우소다.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라 볼일 보는 내내 바깥 바람이 수시로 들고 난다. 나무 창 밖으로 봄날의 푸르름을 구경하는 것도 솔솔하다.


절을 빠져 나와 굴목이재로 들어섰다. 비가 잦아든다. 서부도밭을 지나자 임선교(臨仙橋)다. '신선에 이르는 다리'라니 절로 발걸음이 가볍다. 호젓한 숲길로 들어선다.


길섶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비를 맞은채 길손을 반긴다. 생태체험야외학습장을 지나고 마주한 편백나무숲은 장관이다.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조계산에 이색적인 풍광이다. 60~70년생 편백나무가 거칠 것 없이 하늘로 솟구친 모습이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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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쉼터에 앉아 피톤치드를 들이킨다. 비를 잔뜩 머금은 초록의 숲향은 그윽하고 힘찬 숨 박동이 느껴진다. 편백의 숲을 관통하는 바람 소리를 들어며 눈을 감는다. 몸과 마음이 정갈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편백숲을 지나자 제법 산길다워진다. 계곡 물소리가 청아하고 바람소리, 새소리가 요란스럽다.


오르막 중턱에서 호랑이턱걸이바위를 만난다. 옛날 호랑이가 이 바위에 턱을 괴고 있다가 선하고 악한 사람을 구분해 해코지를 했단다. 숯가마 터도 간간이 눈에 띈다.


숯가마 터를 지나면 숲은 더욱 짙어진다. 계곡 물소리도 저만치 물러난다. 선암굴목이재가 코앞이다.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져 허벅지가 팍팍해진다. 차츰 호흡이 빨라진다. 편안한 코스인줄만 알았는데 비까지 더해 고행길이다. 호흡이 절정에 달했을 때 드디어 선암굴목이재에 섰다.


이제부터는 고행 끝 행복시작이다. 고개 아래에 30년도 훌쩍 넘은 보리밥집이 있기 때문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를 걷는 게 이 보리밥을 먹기 위해서란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름난 집이다.


하우스안에 마련된 평상에 자리를 잡는다. 동그란 쟁반에 각종 나물과 채소가 가득한 밥상이 차려진다. 곰삭은 김치와 된장, 고소한 나물 등 하나하나가 맛깔스럽다.


참기름에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동동주 한 잔을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잠시의 고행은 어느새 사라지고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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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집을 나와 송광굴목이재로 향한다. 산허리를 이리저리 굽이치는 숲길은 경사가 완만하다. 송광굴목이재에 서면 길이 갈린다. 내리 송광사로 이어지는 길과 또 하나 송광사의 산내암자인 천자암으로 가는 길이다. 암자에는 800년생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있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애인처럼 붙어 있어 신비롭다.


몰려온 비안개에 천자암길을 접고 서둘러 송광사로 내려선다. 왼편으로 굵은 물줄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계곡의 넓은 바위에는 초록을 더해가는 이끼가 성성하고 주변으로 진달래며 산벚꽃이 알록달록 그림을 그린다.


줄곧 내리막 돌계단이다. 계곡물소리는 절집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우렁차다. 평지로 내려서 편백숲과 대숲을 거쳐 송광사 앞마당으로 든다. 대웅보전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늙은 매화나무에 스며든다. 봄색이 완연한 절집 마당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예불소리가 가슴 깊이 울린다.


순천=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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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장성분기점에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를 갈아탄다. 이어 담양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주암나들목(송광사)이나 선암사나들목(선암사), 서순천 나들목(순천만)으로 나오면 된다.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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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해변일몰

와온해변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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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낙안읍성민속마을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낙안읍성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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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지나칠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순천만이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부드럽게 휘어진 개펄의 물길이 장관이다또 화포마을에서 보는 일출, 일몰이나 와온해변의 일몰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낙안면의 낙안읍성도 찾아보자. 민속마을인 낙안읍성은 너른 평야에 축조된 성곽으로 100여채의 초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면 조선시대 어디쯤으로 시간이동을 한 듯하다. 조례동의 오픈세트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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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태백 탄광마을부터 1970년대 서울의 달동네 등을 완벽하게 재현돼 있다. 이밖에도 뿌리깊은나무박물관,와온해변,선암사 입구 전통야생차체험관 등도 찾아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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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순천에는 맛집들이 많다. 그중 별미로 꼽히는 것이 짱뚱어탕. 대대포구에 식당이 여럿 있다. 굴목이재를 간다면 선암사 부근의 진일기사식당(사진·061-754-5320)이나 송광사 인근에 길상식당(061-755-2173)이 알려져있다. 굴목이재 보리밥집(061-754-3756.011-9608-3756)만을 찾는다면 먼저 연락을 해보고 길을 나서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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