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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빨간시', '위안부·장자연' 사건의 침묵을 들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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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연극 '빨간시'를 공연 중인 '극단 고래' 출연진들

연극 '빨간시'를 공연 중인 '극단 고래' 출연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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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내 가슴을 찢어서 길어낸 말이야. 내 목숨을 실어서 움직인 말이야. 거짓말이 아닌, 말이야. 허위가 아닌, 말이야."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의 고통으로 흘러 다니게 돼."
지난 2011년 말 이후 무대에 다시 올려 진 연극 '빨간시'는 '말(言)'을 치유로, '침묵'을 고통으로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말'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장자연'사건을 재조명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헌시이며, 고(故) 장자연씨 사건을 다뤘던 언론·경찰·검찰을 향해 진실왜곡을 반복하지 말라는 항변이기도 하다.

'빨간시'는 약자인 여성들이 거대한 힘과 권력에 의해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은 결국 치유되지 않은 채 덮여 있다는 것. 이 세가지를 두 사건이 가진 공통의 화두로 삼았다.

이 연극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위안부들의 상처와 여배우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실제로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일들을 당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극중 할미의 손자로 등장하는 '동주'는 여배우 수연을 폭행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지켜본 목격자였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이 연극은 이러한 동주의 모습이야 말로 우리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모른 척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와함께 '빨간시'는 말을 통한 '용서와 해원'의 경지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극 중 위안부 시절 가진 아들을 평생 미워했던 '할미'는 극중 마지막 대사에서 "니는.. 하늘이 낸 사람이데이.."라며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죽음을 맞는다. 폭력의 결과로 생긴 아들에 대한 사랑은 곧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망가진 삶에 대한 아픈 용서와 화해를 보여준다. 무대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주인공인 할미와 동주의 생사가 뒤바뀌는 과정 속에서 아픈 기억이자 왜곡된 역사인 '침묵의 고리'들이 점차 풀어진다. 생을 되찾은 동주는 깨어나자마자 '수요집회'에 나서게 된다.

이번 무대는 저승장면과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노래와 시들이 한데 어우러진것이 특징이다. 옥황과 염라, 저승사자 등 우리 민간신앙에서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결합, 새로운 시도를 보이고 있다. 배우들이 우리말 한글을 주문이나 노래처럼 외우며 연기할 때, '말'에 대한 철학적 생각들과 의미를 곱씹게 한다.

이 연극은 강애심(할미 역), 박용수(아비 역), 이지현(어미 역), 김동완(동주 역) 등 대학로의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연한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이달 31일까지.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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