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맡기고 돈 빌리는 'IT 전당포' 가보니
가맹점 8곳 거느린 곳도 있어…창업비용 500만원만 내면 제품 감정, 운영 방법 교육 등 논스톱 지원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밀당(밀고 당기기)'은 기본이다. 여차하면 판을 엎을 수도 있다. 한푼이라도 더 받거나 조금이라도 덜 주려는 팽팽한 기싸움. 설전 끝에 거래가 이뤄지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눈다. 세월이 흘러 거래 품목은 바뀌었지만 전당포는 여전히 정(情)을 나누는 삶의 현장이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맡기면 급전을 빌려주는 IT 전당포를 찾은 것은 7일 오후. 서울 용산에 위치한 1세대 IT 전당포는 기억 속 전당포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이나 카메라가 가득한 게 전자상가를 닮았다.
때마침 50대 초반의 손님이 방문했다.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감정을 해달란다. 포장 박스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막 개통한 새 제품이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10년째 근무한 베테랑이자 국내에 IT 전당포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일했다는 직원 김민우씨는 "급전이 필요해서 스마트폰을 새로 개통해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손님이 많다"며 "한꺼번에 4대를 개통해 가져온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의 스마트폰과 노트북 감정을 의뢰하니 "아이폰5는 시세가 가장 높지만 제품 상태가 최상급은 아니고 삼성 노트북도 최신형이지만 키보드가 낡고 외관에 긁힘이 있다"며 "아이폰5는 50만원, 삼성 노트북은 70만원 쳐주겠다"고 답한다. "이자는 월 3%, 대출 기간은 한 달. 석 달까지 연장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IT 전당포를 찾는 손님은 하루에 10여명. 직접 전당포를 찾지 않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손님도 더러 있다. 김씨는 "우리 전당포에서만 한 달에 많게는 2억원을 대출해준다"며 "지금 우리 창고에 담보로 맡긴 기기들의 대출금만 3억원 가량 된다"고 귀띔했다. 담보로 맡긴 제품들은 상자에 담아 품목별, 날짜별로 분류해 보관한다. 창고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드나드는 공간에까지 진열해뒀다.
최근에는 가맹점 문의도 늘고 있다. 그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IT 전당포를 차리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며 "우리 전당포는 가맹점만 8곳"이라고 말했다. 창업 비용 500만원을 내면 제품 감정 방법부터 전당포 운영까지 교육시킨다. 전당포 광고 비용은 본사와 가맹점이 분담한다.
경험 많은 전당포 직원에게도 '진상 손님'은 골칫거리다. 길에서 주웠거나 훔친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다. 김씨는 "10년 넘게 이 바닥에서 일을 해 손님이 물건을 가져오면 본인 물건인지 훔친 물건인지 단 번에 알 수 있다"며 "손님이 시선을 피하거나 질문을 회피하거나 제품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조금만 이상하면 90% 이상이 장물"이라고 말했다. 특히 휴대폰은 기기 번호만 조회해보면 분실 제품인지 아닌지 단 번에 알 수 있다.
IT 전당포에는 장물이 많이 들어와 경찰서와 협조한다. 김씨는 "얼마 전 한 아주머니가 애플의 최신 노트북을 들고 왔는데 주웠거나 훔친 물건이 분명했다"며 "대출을 거절하고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는데 또 다시 왔고 경찰에 신고해 결국 현행범으로 체포됐다"고 얘기했다. 다만 IT 전당포가 장물을 취급한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은 여전히 서운하다. 그는 "서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전당포"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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