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했던 삼라만상에 온화한 기운이 퍼지는 봄이 되면 우리는 자연의 근면과 성실을 느끼게 된다. 봄철의 산과 들을 뒤덮는 사람들의 행렬은 그래서 행락인 한편으로 자연에 대한 경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렬의 앞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이끄는 어느 옛 시인이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산과 들을 찾아 자연의 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그 순간 1600년 전 홀연히 '귀거래(歸去來)'했던 도연명 시인의 인도를 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 굴복하고 싶을 때 자연을 생각하며, 도피하고자 할 때 전원을 꿈꾼다. 그러나 무력해진 마음으로 자연을 찾을 때, 도피하고자 전원을 찾을 때 그 자리에 결코 도연명은 없을 것이다.

그의 전원행은 도피가 아니라 실은 결연한 저항이었다. 녹봉으로 받는 다섯 말의 쌀에 비굴하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며 관직을 내던진 그에게 전원행은 치열한 항거였다. 스스로를 '오류(五柳)선생'이라고 했을 뿐, 성도 이름도 출신도 모른다고 한 것은 혼탁한 현실의 거부였다.


그는 한가한 산속에서 고고하게 은거한 게 아니라 밭을 일구고 국화를 재배한 생활인이었다. 그의 '정밀(靜謐)'은 치열함에서 나왔고, 자연에의 순응은 현실과의 도저한 대결의 이면이었다. 거기에 그의 역설이 있었는데, 거기에 실천적 지식인인 루쉰이 그를 무척 흠모했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역설은 그가 실은 전원으로 떠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안에서 '자연'을 발견했다는 점에 있었다.


"마을 안 오두막집이지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다/마음이 초연하니 사는 곳이 절로 외지다"고 읊었던 것처럼 그 자신이 사는 곳, 그곳이 어디든 거기가 곧 그의 자연이었고,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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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설의 완성은 문득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지은 '자제문(自祭文)'에서 마침내 이뤄진다. 그는 나그네로 머무른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본가(永歸於本宅)'로 돌아가는 자신을 위해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했다. 그를 알리는 묘비도, 그를 기리는 나무도 봉분도 없이 그는 떠났다. 그러나 묘비 없는 묘비는 지상의 어느 묘비보다 우뚝하고, 스스로 완전히 지우려 했던 그 이름은 영원한 불멸성을 얻었다.


이 봄날, 자연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도연명을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어떤 산과 들보다 더 넓은 우리 안의 전원으로 들어가보자. 맹렬한 불꽃이 있었기에 지극히 담담할 수 있었던 도연명이 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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