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2, 2011 등의 숫자가 겉장에 찍혀 나오는 포켓용 수첩을 한쪽에 모으기 시작한 건 1998년부터였다. 지금도 책상 서랍 하나는 매년 하나씩 불어나는 수첩들로 어지럽다. 무슨 연유로 모으기로 했냐고, 왜 하필 그때부터냐고 물으면 난감해진다. 딱히 기억에 없다. 다시 꺼내보는 일도 거의 없다.


반면 회의 때 들고 들어가는 더 큰 사이즈의 다이어리는 그때그때 버린다. 포켓용은 1년에 한 권이면 족한데 회의용은 사정이 다르다. 일이 많은 해는 여러 권 내다버렸고, 어떤 해는 한 권도 못 채웠다.

내 수첩의 생몰주기를 되짚어 본 건 (일종의 무의식에 대한 고찰인데) 순전히 대통령 덕택이다. 새 대통령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왜 그랬는지도 알 수 없지만) 수첩에 뭔가를 꼼꼼히 기록하고, 거기서 뽑아낸 인물을 기용한다는 말을 듣고 내 수첩 사정이 궁금해진 것이다.


나는 왜 회의용은 버리고 포켓용은 못 버릴까? 단순히 크고 작음의 문제는 아닐 터.

곰곰이 따져보니 '사람'과 '일'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서랍에서 포켓용을 하나를 꺼내 들춰보니 이런저런 만남의 기록이 빼곡하다. 기껏 밥 약속 술 모임이지만.(함께한 밥과 술의 추억이 좋은 이와는 만남이 잦아진다는 생활의 법칙을 발견한 건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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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억은 간직하고 일에 대한 기록은 과감히 버리고 있는 건 나뿐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 생몰주기를 취재하는 기자는 어디 없을까? 궁금하다. 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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