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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최장의 시리즈, '재생'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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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최장의 시리즈, '재생'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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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어둠 속에서 나타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에게 조직의 수장인 M(주디 덴치)이 묻는다.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죽음을 즐기고 있었죠." '본드가 대답한다. "누구나 취미가 필요하잖아요." 적과 맞닥뜨리고서야 본드는 자신의 '취미'를 밝힌다. "부활(Resurrection)."

007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007 살인번호'가 세상에 선보인 것은 1962년이었다. 시리즈 50주년을 기념하는 '007 스카이폴'은 단순한 부활의 신호가 아니다. 영화는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한편 다음 작품을 추동할 생명력을 발견한다. 007 시리즈의 정형에 작별을 고하는 이 작품은 '재생(Regenerate)'의 첫 걸음이다.
'007 스카이폴'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거론될 영화는 단연 본 시리즈다. 바이크로 지붕 위를 달리는 오프닝 시퀀스의 추격 장면부터 즉시 본 시리즈를 환기시킨다. 갈등을 설정하는 방식 또한 본 시리즈의 적통을 잇는다.

감독 샘 멘데스는 '007 스카이폴'에서 조직의 '자아분열'을 포착한다. 본드는 탈취당한 하드디스크를 되찾는 과정에서 강으로 추락해 영화 초반부터 일시적 죽음을 맞는다. 본드가 소속된 영국의 첩보조직 MI6는 정체불명의 해커로부터 공격받는다. 수장 M은 사퇴 압력에 직면한다. 이 사태를 야기한 '악당' 라울 실바(하비에르 바르뎀)는 적국의 일원이나 야비한 기업가가 아닌 전직 MI6요원으로 M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다.

MI6와 본드, 실바가 과거의 선택을 회의하고 존재 이유를 자문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21세기를 맞은 007 시리즈가 지닌 고뇌인 동시에 본 시리즈가 적극적으로 발굴한 영역이기도 하다.
'007 스카이폴'은 그러한 고뇌에 답을 제시한다. 먼저 지난 007 시리즈의 관습을 깬다. 본드는 더 이상 마초적 환상의 현현이 아니다. 구시대의 유물으로 취급당하는 본드는 퇴색하고 상처입은 채 땅을 딛는다. 요부로 묘사되는 본드걸도 없다. 시리즈의 자랑이었던 신무기는 ‘미션임파서블4’ 등이 전시했던 기술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조직의 수명을 담보했던 외부의 적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Q와 본드가 감당해야 하는 비웃음이다. Q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문회 자리에 모인 ‘관료’들은 “에스피오나지(첩보활동)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는 흑과 백의 이분법적 구도로 나뉘었던 냉전시대보다 더욱 정교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위협이다. 테니슨의 ‘율리시즈’속 한 구절로 답변을 마무리한 Q는 묻는다. “진짜로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

본드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벌판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접전에서 본드와 Q는 오래되고 낡은 무기로 저항하고 다치지만 결국엔 모종의 승리를 거둔다. 영화사 최장 시리즈물의 과거와 미래가 겹쳐지는 자리다. 이어지는 결말의 반전은 앞으로 또 다른 007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007 시리즈의 전통을 과감하게 정리한 데 기존 팬층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생명연장의 꿈을 이룩하려면 단호한 요법이 필요한 법이다.

'007 스카이폴' 속 '클래식 본드'는?
본드는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캐릭터다. ‘007 스카이폴’ 역시 지난 50년간 본드의 상징이 된 요소들을 끌어안았다.

본드의 총
대대로 본드의 첨단장비를 책임지는 역할인 Q가 건넨 무기는 손금을 인식하는 권총이다. "손금으로 암호화됐죠. 당신만 발사할 수 있습니다. 막무가내식 살인기계라기보단 당신의 개인적 표현에 가깝죠." 이 권총은 '월터(Walther)PPK'다. 본드를 대표하는 총이다. 최초의 007 시리즈인 '007 살인면허'에서 본드는 Q에게 원래 쓰던 권총인 베레타를 반납하고 월터 PPK 사용을 명령받는다. 손금을 인식한다는 설정부터 Q가 하는 대사까지 '007 살인면허'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본드의 차
애스턴 마틴사의 'DB5'는 가장 유명한 '본드카'다. 첫 등장은 1964년의 '007 골드핑거'였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본드는 애스턴 마틴의 'DB 마크(Mark)III'를 탄다. 그러나 제작진은 당시 애스턴 마틴의 최신모델이라는 이유로 DB5를 선택했다. 이후 DB5는 '007 골든아이'부터 '007 퀀텀 오브 솔러스'까지 수차례 등장하며 본드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한다. '007 스카이폴'에서는 고전적 디자인 그대로, 번호판까지 최초 등장때 달고 있었던 'BMT 216A'를 달고 등장한다.

본드의 술
마티니를 주문할 때마다 본드가 하는 말이 있다. "섞지 말고 흔들어서(Shaken, not stirred)."아마 가장 유명한 제임스 본드의 대사다. 본드의 술은 대대로 보드카 베이스의 드라이 마티니였다. 그러나 '007 스카이폴'과 하이네켄이 글로벌 파트너쉽을 맺으면서 본드도 하이네켄을 마셔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물론 본드의 취향은 고집스럽다. 마카오의 카지노에 입성한 본드가 바에 앉자 쉐이커를 흔든 바텐더가 칵테일을 한 잔 내민다. 본드는 눈인사로 답한다. 무슨 칵테일이냐고? 그건 분명히 마티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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