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엔高 여파.. 日 '모노즈쿠리' 자존심이 사라진다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근호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메이커 닛산자동차는 2010년부터 태국 등의 해외 현지공장에서 만든 차량을 일본 내수용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닛산차 관계자는 “처음에는 일본 국내 생산품이 아닌 차량의 품질을 믿을 수 있느냐는 여론이 있었지만, 지금은 쑥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소비재에 그치지 않고 산업용 기계나 장비, 화학제품 등 자본재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닛산 등 자동차업체는 물론 여성용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 전자제품업체 도시바 등도 해외 생산 제품을 국내로 돌리고 있다.
시세이도는 다음달부터 대만·베트남에서 생산한 제품을 들여온다. 완전히 해외 공장에서만 만든 제품을 수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8월31일부터 태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소형차를 일본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일본 최대 트랙터 생산업체 구보타는 중국에서 만든 자사 브랜드 이앙기의 판매를 시작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에서는 생산지가 어디냐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소비자들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빅3’ 자동차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멕시코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 내로 들여 왔고,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 역시 동유럽에 생산기지를 두었다.
일본에서도 섬유·의류제품의 경우는 오래 전부터 중국산 제품들이 수입되고 있었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일본 땅에서 생산된 물건이 좋다”는 오랜 고정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그 밑에는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뜻)’로 상징되는 일본 전통의 장인정신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 그리고 일본 경제의 위기는 일본인들의 이런 ‘마지막 자존심’도 무뎌지게 만들고 있다.
사세 마사토 딜로이트도마츠컨설팅 애널리스트는 “일본에서 팔리는 차는 당연히 일본제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많았던 것을 볼 때, 닛산차의 결정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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