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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힐링캠프', 웃음 되찾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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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17일동안 진행된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위한 제주 힐링캠프'에 참가한 김동석군(가명)과 아버지 김영수씨(가명)가 함께 제주 절물휴양림에서 산책하고 있다.

지난 16~17일동안 진행된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위한 제주 힐링캠프'에 참가한 김동석군(가명)과 아버지 김영수씨(가명)가 함께 제주 절물휴양림에서 산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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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그 추운 겨울에 애 옷을 벗기고 속옷만 입혀서 5명이 번갈아가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넘어지면 밟아버리고, 다시 발로 차고 이틀 동안 맞아 전치 5주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난 17일 제주도 김정문알로에 농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피해학생 가족 힐링캠프'에 참석한 중학교 3학년 김인수(15ㆍ가명)군의 어머니 장연숙(가명)씨는 지난 1월 아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장씨는 "일이 터지기 얼마 전부터 계단에서 굴렀다고 하고,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다쳤다고 하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들한테 당하고 있었다"면서 "그 동안 직장 생활한다고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쓴 게 더욱 자책감으로 다가왔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사건해결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입은 상처 또한 컸다. 가해자 부모들은 무조건 없던 일로 하자며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했고, 금전배상이나 가해학생 전학 등 합의한 사항도 다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가족들은 아이의 닫힌 마음을 여는 데 집중하기로 하고 지난 2월부터 6월 말까지 일주일에 한 번 씩 가족단위로 꾸준히 심리 상담을 받았다.

장씨는 "상담을 받으면서 아이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도 들어주고, 명령이 아닌 대화로 풀어가면서 서서히 아이의 마음이 열리는 걸 느꼈다"며 "진작 대화를 나누는 법을 알았다면 우리 아이가 그렇게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심리상담 후 가족간의 대화도 늘어나고 아들이 많이 밝아졌다"며 "이번 캠프에도 참여하는 등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캠프에 참가한 또 다른 학교폭력 피해학생 김동석(18ㆍ가명)군은 아버지 김영수(가명)씨와 함께 왔다. 김씨는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회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가정이 편하지 않으면 바깥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힐링캠프에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부자는 지난 5월 아들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 의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거의 대화하지 않던 사이였다. 둘만의 여행도 이번 힐링캠프가 처음이다. 김씨는 "평소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면 아들 얼굴 볼 시간도 제대로 없다"며 "노력은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아들과 자주 얘기했어야 하는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고 말했다.

이들 부자는 16일부터 17일까지 1박2일 동안 '학교폭력 피해학생 가족 힐링캠프'에 참가해 함께 알로에 비누 만들기, 댄스 테라피, 절물휴양림에서의 힐링트래킹, 전문가 심리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폭력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 피해학생과 가족 30명이 참가한 이번 캠프에서는 피해가족과 학생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들 부자는 캠프를 계기로 부자관계에 쌓인 앙금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9시가 되면 집에 들어와야 될 아들이 12시까지 안들어오면 혹시 또 그런 일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돼 자주 싸웠다"며 사건 이후 오히려 부자 사이가 더 나빠졌다고 털어놨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대화가 없었고, 사건 이후에는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번에 캠프를 함께 하면서 아들과 많이 통한 것 같다"며 "원래 둘째가 애교도 많고 부모한테 스킨십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동안 받아주지 못했던 게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아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스킨십을 늘려야겠다"고 말했다.

김 군 역시 "처음에는 캠프에 별 기대 없이 왔는데,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이런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담 받고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평소에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들었는데 이번 캠프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아빠랑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돼 좋았다"며 "앞으로 부모님과도 잘 지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17일 1박2일간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제주힐링캠프'에 참여한 학생이 심리테라피 시간에 제주대 곽영숙 교수와 개별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17일 1박2일간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제주힐링캠프'에 참여한 학생이 심리테라피 시간에 제주대 곽영숙 교수와 개별상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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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캠프에 참가한 피해학생 부모들은 '가해자 가족의 심리상담 및 치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가해자 부모를 만나서 조율하는데 학생보다는 부모 문제가 더 많다고 느꼈다"며 "처벌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면 가해학생도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인수군의 어머니 장연숙씨도 "피해자만 심리치료를 받을 게 아니라 가해자 가족도 반드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가해자들도 심리치료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캠프에서 특강과 상담을 맡은 권영숙 제주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의 50%는 과거 피해자였던 아이들"이라며 "학교폭력 문제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가해학생에게만 잘못을 묻기보다는 가정, 학교, 사회의 통합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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