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하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열하일기는 일본인 아오야기 고타로가 1915년 번역본을 낸 이후 김성칠 선생, 북한의 리상호 선생, 연민 이가원 선생 등 한문학계의 거두들이 번역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장안의 화제가 됐고, 이전의 번역 결과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 번역 완역 결정판'으로 번역본을 낸 김혈조 선생의 '열하일기'가 나왔다.
간단한 오역의 예를 들어보자. '압취담반(鴨嘴膽礬)'이라는 말이 있다. 기존 번역본은 모두 '오리주둥이(鴨嘴)'와 '담반(膽礬)'이라고 하여 2가지 본초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네 글자는 그 자체가 담반(혹은 석담)을 가리킨다. 담반 가운데 오리주둥이 빛깔이 나는 것이 가장 최상급이기 때문에 위 네 글자는 '최상급 담반'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도엽(倒!!여기!!)도 기존 번역물은 '뒤틀어지다' 혹은 '보조개가 뒤틀어지다'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도엽은 두창(痘瘡)의 악증(惡症) 가운데 하나로 증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머무는 상태를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다. 또 인면창(人面瘡)도 글자를 그대로 풀어 '얼굴에 돋는 창' 혹은 '사람 얼굴에 나는 종기'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면창은 무릎이나 팔뚝 등에 난다고 알려져 있으며 종기 모양이 사람의 얼굴 형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오류를 최소화하고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각계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동 작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이는 한의학 자료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국고문헌에 대한 보정, 각종 문집 등의 번역과 교열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줄 것이다. 올해 한국고전번역원은 우리나라 전통 기술서를 포함한 자부(子部) 서적의 번역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번역기관답게 각계 연구자의 역량을 집결시키는 좋은 사례가 제시되길 기대한다.
박상영 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그룹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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