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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포럼]고문번역의 오류, 학계간 공동연구로 풀자

최종수정 2020.02.12 09:46 기사입력 2012.04.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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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포럼]고문번역의 오류, 학계간 공동연구로 풀자
한문에 문외한이라도 연암 박지원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 직하다. 그는 다산 정약용과 함께 연구사를 따로 다루어야 할 정도로 비중이 큰 인물이다. 그런데도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 번역은 최근에야 이뤄졌다. 보통 사람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연암 박지원 하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열하일기는 일본인 아오야기 고타로가 1915년 번역본을 낸 이후 김성칠 선생, 북한의 리상호 선생, 연민 이가원 선생 등 한문학계의 거두들이 번역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장안의 화제가 됐고, 이전의 번역 결과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 번역 완역 결정판'으로 번역본을 낸 김혈조 선생의 '열하일기'가 나왔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그룹은 실학 연구에서 수많은 번역본을 양산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열하일기의 번역 가운데 본격적 의미의 의학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금료소초(金蓼小抄)'에 대한 번역이 충실히 진행됐는지를 검토했다. 우리는 기존 번역물 가운데 특히 '한국고전종합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로 파급력과 영향력이 있는 연민 이가원 선생의 번역본과 가장 최근의 완정(完整)된 번역본이라 할 수 있는 김혈조 선생의 번역본을 면밀히 검토했다. 이 두 번역 결과물은 대중성뿐 아니라 학술적 의미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기존 번역물뿐 아니라 가장 최근의 번역물에서도 적지 않은 번역상의 오류가 재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오역의 예를 들어보자. '압취담반(鴨嘴膽礬)'이라는 말이 있다. 기존 번역본은 모두 '오리주둥이(鴨嘴)'와 '담반(膽礬)'이라고 하여 2가지 본초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네 글자는 그 자체가 담반(혹은 석담)을 가리킨다. 담반 가운데 오리주둥이 빛깔이 나는 것이 가장 최상급이기 때문에 위 네 글자는 '최상급 담반'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도엽(倒!!여기!!)도 기존 번역물은 '뒤틀어지다' 혹은 '보조개가 뒤틀어지다'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도엽은 두창(痘瘡)의 악증(惡症) 가운데 하나로 증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머무는 상태를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다. 또 인면창(人面瘡)도 글자를 그대로 풀어 '얼굴에 돋는 창' 혹은 '사람 얼굴에 나는 종기'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면창은 무릎이나 팔뚝 등에 난다고 알려져 있으며 종기 모양이 사람의 얼굴 형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외에도 기존 번역물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오역 사례의 대부분은 한의학 지식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오류가 우리에게 익숙한 한의서인 '동의보감'에 대한 면밀한 검토만으로도 대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금료소초' 등 실학자가 남긴 의학 관련 자료가 한학자와 한의학자 사이에서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음이다.이런 상황은 한학자는 한의학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번역에 임했고, 한의학자는 자기 영역이 아닌 것으로 치부해 온 데 기인한다.

앞으로 이와 같은 오류를 최소화하고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각계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동 작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이는 한의학 자료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국고문헌에 대한 보정, 각종 문집 등의 번역과 교열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줄 것이다. 올해 한국고전번역원은 우리나라 전통 기술서를 포함한 자부(子部) 서적의 번역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번역기관답게 각계 연구자의 역량을 집결시키는 좋은 사례가 제시되길 기대한다.

박상영 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그룹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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