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칼럼]한국경제의 '2013년 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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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부쩍 많이 들려온다. 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현실에 실망한 다수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럴듯한 경제개혁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는 한국경제의 병증을 치료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정치세력이 집권하기를 바란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경제 재조명'을 주제로 두 달가량의 토론 행사에 들어갔다. 선거의 좋은 점 하나는 이렇게 반성과 새로운 모색의 계기가 돼 준다는 데 있다.


이런 때에는 성장동력 회복, 양극화 해소, 복지 확충, 재벌 개혁과 같은 분야별 쟁점을 뛰어넘어 큰 틀에서 한국경제 전체를 바라보고 현주소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으로 '2013년 체제'론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원로 지식인 백낙청씨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고, 그가 말하는 '2013년 체제'는 경제체제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그는 '1987년 체제'로는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할 수 없으니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 재편이 요구된다는 취지로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평가하는 데도 이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을 기점으로 형성된 1987년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새로운 체제를 이야기하는 걸까.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7년 체제는 민주화ㆍ자유화ㆍ남북화해 이 세 가지 동력에 기대어 이뤄졌는데, 그 뒤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노무현 정부 중반부터 지리멸렬한 교착 상태에 빠졌다"면서 '자유화 흐름이 재벌 몸집 불리기로만 이어진 것'을 그 단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선진화 시대를 열자는 명분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그 뒤로 우리 사회는 선진화는커녕 1987년 체제 후반의 혼란을 재앙 수준으로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여야 정당이 4ㆍ11 총선을 앞두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경제 분야의 핵심 구호로 내세우는 것도 맥락은 같다.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규정이 새삼 주목받는 것도 그렇다. 이런 정치적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이번 총선과 연말 대선이라는 두 차례 선거가 단지 정권 담당자의 변화만이 아니라 새로운 한국경제 모델 구축을 포함한 체제 차원의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열망의 배후에는 '부자 되세요'를 아무리 외쳐본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구조에 예외의 틈새조차 만들 수 없다는 좌절감이 깔려 있다. 그래도 선거의 해가 되니 '너나 잘하세요'류의 냉소적 개인주의를 넘어 선거를 통해 현실을 고쳐보자는 민심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공약을 보면 선거에 큰 기대를 거는 '2013년 체제'론이 과연 현실에서 입증될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겠다는 등 '영합성 공약'은 자상하고 세밀하지만, 재벌 규제를 비롯한 '개혁성 공약'은 두루뭉술하고 구태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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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인 재벌 관련 공약에서 새누리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의 말대로 '공정거래법을 일부 손질'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출총제니 재벌세니 말은 맵지만 실효성에 대한 믿음은 주지 못하고 있다. 내수 기반을 구조적으로 확충해 수출대기업에 발목 잡힌 '국민경제'를 구해낼 청사진은 제시된 바 없다.


정치인은 창의적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하고, 시민사회는 더 적극적으로 정치권 공약 개발에 관여해야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가재정과 기업활동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정치권 공약을 검증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일에 정부가 너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관료의 정형화된 틀은 정치적 상상력 발휘에 장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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