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던 하이닉스가 벌떡 일어난 건…

[BOOK]탈출구는 있다..21세기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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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감동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 찾아왔다. 이 책의 맨 뒷장에 적힌 한 편의 시를 읽고 난 뒤였다.


'어느 춥고 어스름한 저녁/ 긴 여정에 오른 한 노인이… 계곡을 건너갔네/ 그는 다시 돌아서서 물길을 가로지를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네/ 옆에 있던 한 나그네가 말하기를/ "노인이여, 당신은 다리를 놓기 위해 힘을 낭비하고 있고… 이곳을 다시 지나칠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런데 어찌 이 황혼에 다리를 만든단 말이오?"/ 노인은 하얗게 샌 머리를 들었다네/ "내가 지나온 이 길을 오늘 내 뒤를 따르던 한 젊은이 또한 지날 것이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던 이 계곡이 그 금발의 젊은이에겐 위험이 될지도 모를 일이오… 나는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드는 것이라오.'

자신을 뒤따르는 젊은이가 위험을 겪지 않도록 다리를 짓는 노인. 이 노인과 같은 마음으로 책을 낸 사람이 있다. 하이닉스가 현대전자이던 시절 이 회사에 입사해 지금껏 일하고 있는 고광덕씨가 바로 그다.


고씨는 최근 파산 직전에 놓였던 하이닉스가 어떻게 세계 2위의 반도체 업체로 다시 서게 됐는지, 그 혁신의 과정을 담은 '21세기 난중일기- 파산 직전의 하이닉스를 살린 혁신 이야기'를 펴냈다.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어 다소 더디게 책을 읽어나갈 때까지만 해도 다른 경제ㆍ경영서와 다른 점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런데 시가 쓰여진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21세기 난중일기'는 단순히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기 회사보다 더 늦게 혁신을 꿈꾸는 회사들을 위한 기록을 남겨둔다는 의미로 책을 낸 것이었다. 다리를 만드는 노인의 얘기가 담긴 저 시가 이런 생각을 더 명확하게 해줬다.


이 책이 뒤쫓아 오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하나 더 있다. 하이닉스의 혁신 방법을 단계별로 적어두거나 그 과정에서 참고했던 외국 기업의 사례 등을 세세하게 쓴 책의 뒷부분이 그것이다.


고씨가 저 시 속에 등장하는 노인의 맘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난중일기'의 내용을 살짝 엿보자면 이렇다. 1983년 첫 발을 내디딘 하이닉스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천 억원에 달하는 흑자를 내는 기업이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1GB 싱크 DRAM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하이닉스에 위기가 찾아온 건 1999년의 일이었다. LG반도체 인수 합병에 따른 부채 증가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하이닉스는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랬던 하이닉스를 일으켜 세워 준 건 기업 혁신법 가운데 하나인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이었다. 기업 생산성을 높이려 개발, 영업, 관리 등 모든 분야의 직원이 참여해 조직적으로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TPM. 고씨는 이를 "일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창조해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재정의했다.


그는 TPM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조급한 생각을 버리고 한 단계씩 차근 차근 혁신을 이뤄나갔다. TPM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 5개월 동안은 이를 먼저 하고 있는 다른 공장들을 꼼꼼히 살피며 자료를 확보했고, 그 뒤엔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짜는 데만 꼬박 1개월을 바쳤다.


'전원이 참여한다' '중복소집단(추진위, 분임조)을 운영하라' '한 단계씩 밟아나가라' 등과 같은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켰던 고씨는 결국 TPM으로 회사를 살려냈다. 2003년 하반기에 하이닉스가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이었다. TPM을 도입한 지 불과 수 개월 만의 성과였다.


고씨는 '21세기 난중일기'에서 장비 고장을 줄이는 법에서부터 불필요한 것들을 작업장에서 치우는 법, 반도체 장비 이전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법, 직원들에게 TPM 관련 교육을 효과적으로 하는 법 등을 세밀하게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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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심함과 꼼꼼함이 하이닉스 재도약의 발판이 된 것일까. 하이닉스는 2007년 하반기에 몰아친 반도체 업계 불황마저도 딛고 지난해 사상 최대 흑자를 달성했다. '21세기 난중일기'라는 제목처럼 이 책엔 하이닉스의 재기 과정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얘기가 녹아있다.


21세기 난중일기-파산 직전의 하이닉스를 살린 혁신 이야기/ 고광덕 지음/ 성안당/ 1만3800원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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