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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 한국 축구 위한 십자가를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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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 한국 축구 위한 십자가를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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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시한폭탄의 초침은 멈췄다. 마침내 터진 갈등 속에서 조광래 대표팀 감독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번 기회에 '십자가'를 지고 한국 축구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지난 2일 조 감독은 축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유럽 등지를 돌며 해외파의 기량을 직접 점검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해외파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었고, 올림픽 대표팀과의 중복차출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워낙 민감했던 사안이라 취재진의 질문을 피할 법도 했지만 조 감독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기자회견 직전,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6월 평가전 차출 대상 선수 명단을 기술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받아든 종이를 내팽개쳤다. 올림픽 대표팀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조 감독 역시 이 위원장의 '무례함'에 화가 단단히 났다.

곧바로 이어진 기자회견, 조 감독은 A대표팀에만 차출될 수 있는 15명가량의 '보호선수'를 언급했다. 기술위원회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 그렇다고 타협의 여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논의해 해결하고자 했다.구자철(볼프스부르크) 등 주요 선수에 대해서도 일시적으로 양보할 생각도 있었다. 다만 중복차출에 대한 더 이상의 무의미한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

곧바로 이 위원장의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보호선수 같은 것은 없다"며 "한국 축구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기술위원회는 일방적으로 선수를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에 배정했다.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2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조 감독의 기자회견. 상황은 20여 일 전과 비슷했다. 당초 이날 기자회견은 다음달 3일 세르비아, 7일 가나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는 서론에 불과했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감독 업무 수행의 고유권한인 선수 선발을 놓고 역대 어느 대표팀에서도 자행된 적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한국 축구 미래와 도약을 위해 고심 끝에 결정했다"며 "기술위원회와 기술위원장의 현재와 같은 인식은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공식 질의를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 감독의 공개 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가대표팀 운영에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업무인 선수 선발권에 대한 기술위원장의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감독의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제시해 줄 것. 둘째, 대표팀 감독이 언론과의 인터뷰 시 협회의 사전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다.

원칙적으로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선수 선발권이 없다. 이는 대한축구협회 정관에도 나와있다. 47조 1항 기술위원회의 설치 목적은 '축구기술과 관련된 제반업무를 관장하는 주무기관으로서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기술 분석 등을 통한 축구의 기술발전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로 정의되어 있다.

기술위원회의 기능을 다룬 2항을 봐도 마찬가지다. '선수 선발과 관련된 업무의 검토 및 건의'라고만 한정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할 뿐, 결정권이 있다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조광래 감독 인선 당시 "기술위는 감독을 뽑을 권한만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선발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차출 논란에 대해 마치 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일방적 결론을 내렸다. 지난 3월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의 중재 아래 결정된 '중복 소집 시 A대표팀 우선 차출'의 원칙도 무시됐다. 조 감독이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조 감독은 기술위원장의 고압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차출 관련 명단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아니다. 그것이 곧 대한민국 축구이며,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감독을 떠나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협회의 '인터뷰 통제'에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홍보국을 통해서만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자는 의도보다는 감독의 손발을 묶으려는 태도라 여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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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대립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결과였다. 축구계의 대표적인 '야권 인사'였던 조 감독이 대표팀의 수장을 맡았기에 기득권을 가진 협회 측과의 대립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번 공개 질의가 단순한 항명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유다.

선수 선발을 두고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이 대립한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대표팀 선발 과정에 기술위원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인맥·학맥 축구'란 비판의 근거도 여기서 나왔다. 이에 거스 히딩크, 조 본프레레 감독 등 외국인 감독들은 "왜 기술위원회가 감독의 선수 선발에 관여하는지 모르겠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교통정리가 되야 한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각급 대표팀 운영 프로그램도 이번 기회에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간 겹치는 선수에 대한 명확한 차출 방안이나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한국 축구는 과거 김병수, 고종수, 이동국, 박주영은 물론 지금의 지동원에 이르기까지 젊은 재능을 지나치게 혹사해왔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대표 선발 및 운영 방안은 선수 보호 차원과 진정한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조 감독이 진 '십자가'의 의미를 신중하면서도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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