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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백은 정말 구시대의 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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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인천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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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K리그가 때아닌 스리백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계기는 K리그 5라운드였다. 8경기에서 터진 골은 고작 10골. 축구팬이 가장 싫어한다는 0-0 무승부가 네 경기나 나왔다. '수비축구'가 도마 위에 올랐고 불씨는 어느덧 스리백으로 옮겨 붙었다. 구시대적이고 수비적인 스리백 시스템이 K리그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축구에서 스리백은 '절대악' 취급을 받아왔다. 스리백을 수비축구의 동의어로 사용했고, 스리백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주말 한 해설위원은 중계방송 도중 "스리백은 현대 축구에 맞지 않은 낡은 전술"이라고 공개적으로 폄하했다.
K리그에 대한 '수비축구'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스리백은 과연 온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비를 중시하는 팀이 스리백을 쓸 수는 있어도, 스리백에서 수비축구가 비롯된다는 비난은 허점이 많다.

2007년 포항 스틸러스는 공격적인 스리백 시스템으로 K리그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우승팀 브라질의 주 포메이션이 3-4-2-1 였던 것도 주목해 볼만 하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과 2010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는 물론 최근 AC밀란과 리버풀도 스리백을 사용했하지만 이들에게 수비축구란 비난을 보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축구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자 '신화' 중 하나가 "포백은 공격적이고 현대적인 축구, 스리백은 수비적이고 구시대적인 축구"라는 정의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꼭 옳은 말도 아니다.
◇ 스리백에 대한 오해

신문선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설명은 단호하다. 그는 스리백은 수비적, 포백은 공격적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포메이션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포메이션은 경기 시작 당시 선수 배열의 개념일 뿐. 중요한 건 시스템과 전술 소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스리백은 세 명의 중앙수비수를 포진하는 전술이다. 그만큼 중앙이 탄탄해지는 동시에 측면에선 포백을 상대로 열세를 띄기 쉽다. 따라서 좌우 측 윙백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기술과 순발력은 물론 수비적 능력도 갖춰야 한다. 수세에 몰릴 때 윙백이 재빠르게 가담하면 수비는 4~5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 공격 할때도 같은 이점이 생긴다.

이처럼 윙백이 폭넓은 활동량으로 공수 모두에 기여할 때 전술적 효율은 극대화된다. 80년대 말 세계최고의 리그로 군림했던 세리에A도 이 점을 잘 활용했다.

물론 윙백이 상대의 측면에 짓눌리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윙백은 아래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고, 결국 5백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전방 공격수도 2선으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3-4-3이나 3-5-2가 5-4-1로 둔갑해버리는 셈이다.

이를 전술가들은 '카테나치오화(化)'라고 부른다. 포백 수비 아래 리베로를 두었던 이탈리아식 '빗장수비'와 비슷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를 스리백의 부작용이 아닌, '스리백은 수비적이고 후진적'이란 정의로 결론 내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2002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냈던 히딩크호의 3-4-3만 봐도 알 수 있다. 스리백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 투톱을 봉쇄했다. 더불어 아래에서부터의 강한 압박으로 윙백의 활동 반경을 윗선으로 끌어올려 5백으로 전환되는 빈도를 낮췄다. 이영표와 송종국은 수비에서도 공헌했지만,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측면 공격을 도왔다.

◇한국은 왜 스리백을 싫어하나

그렇다면 한국에는 왜 스리백에 거부감을 갖는 풍토가 있을까. 신 의원이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현대축구에서 스리백이 가장 득세했던 시기는 1990년 이태리 월드컵이다. 당시 서독은 3-5-2 시스템으로 세계무대를 평정했다.

한국도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스리백을 사용했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신 위원은 "한국은 늘 허약한 중앙수비가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스리백의 간격을 좁혀 중앙 수비를 강화했고, 대신 측면 미드필더를 풀백처럼 활용했다. 선진축구의 스리백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국제축구연맹(FIFA)은 오프사이드룰을 완화하는 등 공격축구의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원톱 시스템의 득세다. 미드필드를 두텁게 해 중원경쟁에 힘을 쏟는 동시에 2선과 측면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보다 한 명 정도 많은게 이상적이다. 같을 경우 1대 1 개인 기량 차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쉽고, 두 명 이상 많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원톱을 상대로 세 명의 중앙 수비수는 필요 없게 됐다. 이에 포백에 기반을 둔 전술이 유행을 탔다.

이런 분위기와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스리백은 한국에서 마치 구시대적 유물이자 극복대상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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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의 항변

K리그 지도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스리백은 수비적이지도, 구시대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윤성효 감독은 지난해 수원 부임 이후 4-4-2 내지 4-2-3-1 포메이션을 주로 활용했다. 반면 서울과의 라이벌전 등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선 스리백을 종종 사용했다.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스리백이 수비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럼 공격수를 4~5명 투입하면 골을 많이 넣는가"고 반문했다.

"스리백을 쓰더라도 윙백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면 오히려 수비숫자가 부족한 셈이다. 다만 상대에 따라 스리백을 써서 공격이 잘될 수도 있고, 상대가 그날 경기를 잘 풀어내면 밀리는 거다. 스리백이 꼭 수비만을 위한 것이란 지적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포백이 숫자만 따지면 수비수가 더 많은 포메이션이다. 스리백 쓰면서도 득점 많이 하면 수비했다는 소리 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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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울산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골대 앞에 열한 명이 서있어도 골이 들어가는 게 축구"라고 말했다. 그는 "스리백이 구식이란 생각은 잘못됐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종종 보인다. 상대 전술에 따라 변화를 주는 부분일 뿐"이란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우리 팀이 스리백을 쓸 땐 좌우측면 윙백인 송종국과 최재수가 중요하다. 이들이 측면에서 왕성하게 움직여준다면 공격에서도 문제가 없다. 반면 제대로 공격가담을 못 하고 내려앉으면 5백처럼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부임 초반 당시 도입하려 했던 '포어리베로'도 같은 개념이다. 부족한 중앙 수비력을 중앙 수비 세 명의 조직력을 통해 메우고, 대신 공격시엔 스리백 중 한 명이 전진 배치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 중원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만화축구'란 용어 유행의 시발점이 될 만큼 소화하기 어려운 전술이었지만, 스리백의 장점 극대화란 측면에선 주목할만한 전술이었다.

◇ 오해 대신 이해하면 재미는 두 배

이처럼 스리백은 잘만 사용하면 수비의 안정화는 물론 공수 모든 상황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다주는 전술이다. 동시에 풍부한 중앙수비 자원과 공수를 겸비한 활동량 많은 윙백이 없다면 쓸 수 없는 전술이기도 하다. 2002월드컵 당시 브라질이 전통적인 포백 을 버리고 3-4-1-2을 구사하면서도 위력적인 공격력을 발휘했던 데에는 카푸와 호베르투 카를로스라는 걸출한 두 윙백의 역할이 컸다.

스리톱을 쓰는 3-4-3이나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포진한 3-5-2도 마찬가지다. 이들 전술은 기동력과 체력, 강한 압박 능력이 없다면 소화가 어려운 전술이다. 이를 충족시켜줄 선수 자원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스리백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는 신태용 성남 감독의 투정 섞인 고백도 같은 맥락이다.

색안경을 벗고 스리백을 온당한 하나의 전술로 보는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리백의 특성과 전술적 가치를 이해할 때 축구를 보는 재미는 더욱 커진다. 아울러 최근 K리그를 향한 비난의 방향에도 나침반을 달아야 한다.

신문선 해설위원은 최근 K리그에 대한 '수비축구 논란'에 대해서 일침을 가했다. 그는 "현재 K리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면 수비축구냐, 스리백이냐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공수전환속도를 좀 더 높이고, 지지 않기 위함이 아닌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비축구를 펼치기 때문에 재미없는 축구라는 비판은 생산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핵심을 벗어난 비난이란 뜻이었다.

김호곤 감독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수비축구라 비난하는 요즘 분위기는 잘못됐다. 다 쓸데없는 얘기다. 수비축구, 실리축구라 하지만 그날 전략전술에 따라 수비 혹은 공격에 무게중심을 둘 수도 있는 거다"고 얘기했다. 더불어 "진짜 문제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오면 그걸 뚫어낼 수 있어야지. 상대가 수비해서 우리가 득점을 못한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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