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물가대책]물가대책 책임공방 예고편
포장지만 바꾼 물가대책… 거시정책 변화 눈길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13일 정부가 내놓은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은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유통구조 개선과 담합·불공정행위 단속은 늘 해오던 업무이고, 종전에도 수급 불균형으로 농수축산물 값이 뛰면 대개 관세를 낮추거나 정부 비축분을 풀어 공급을 맞춰왔다.
행정력이 직접 닿는 공공요금을 묶어 물가 부담을 더는 것 역시 전통적이고 손쉬운 물가관리 방식 중 하나다. 민간에 고통분담을 요구하기 전 으레 해오던 작업이기도 하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눈에 보이는 노력'을 채근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각 부처가 늘 해오던 작업의 포장지만 바꾼 셈이다. 새삼스럽다면 '경제검찰'이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을 '물가관리 기관'으로 재정의하면서까지 호들갑을 떨고 있는 부분 정도다.
이런 대책들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짧게 보면 그렇다. 정부가 값을 정할 수 있는 공공요금은 연내 동결되거나 올라도 소폭 인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전기·수도·버스·지하철 요금처럼 실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이 동결되면 서민들의 경기 체감도도 높아질 수 있다.
공정위와 국세청이 나서 기업들을 압박하니 지난해 가격을 올렸던 두부와 커피 등 일부 가공식품 가격도 찔끔 내려갔다. 지난해 평균 20.5% 값을 올린 풀무원은 12일 두부 제품 6종의 가격을 25일부터 평균 5.7% 내리기로 했다. CJ제일제당도 두부 제품 6종의 가격을 24일부터 평균 7.7% 인하한다. 동서식품도 이날 맥스웰 캔커피 출고 가격을 17일자로 평균 10% 낮춘다고 밝혔다. 설 전후 최대 15% 수준의 가격 인상을 예고한 동아원과 CJ제일제당 등 제분업체들도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유가와 곡물 가격 등 원재료비가 오르고,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완력'으로 물가를 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동결' '인상시기 분할'이라는 표현의 함정도 주의해야 한다. 바꿔 생각하면 당장은 물가 상승세가 억눌려 있지만, 후일 단기간에 물가가 크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되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철학에 변화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대책을 발표하면서 "올해 상반기에는 경제 정책의 우선 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거시정책은 물가안정 기조를 확고히 해 나가는 가운데 경기·고용 상황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운용하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거시정책 조합(Policy Mix)이 이뤄지도록 유관 기관 사이의 긴밀한 협조를 하겠다"는 표현도 썼다.
'성장도 하고, 물가도 잡겠다'던 정부가 상반기에는 전자보다 후자에 힘을 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고백으로도 읽힌다. 지난해 12월 14일 발표된 '2011년 경제정책방향'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알 수 있다.
정부는 당시 "물가안정 속에 경기회복 흐름이 장기간 지속되도록 하는 데에 거시경제정책의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물가에 신경을 쓰지만, 무게중심은 성장에 두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날 나온 대책에선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요사이 물가 여건을 정부가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부 윤종원 경제정책국장도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가 거시정책의 주안점을 물가 안정에 두겠다고 언급한 것은 직접 물가를 내리거나 동결하는 효과를 내지 않더라도 수요 부문의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차단하도록 신호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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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정책 조합을 언급한 점도 밑줄을 그을 만하다. 이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나 원화절상을 어느 정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더욱 주목된다. 한은은 이날 시장의 예상을 깨고 두 달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런 움직임은 물가 상승기 책임 공방이 시작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한은이 부랴부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미 실기(失期)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한은의 금리 인상을 에둘러 통제해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부 나름의 출구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책에서 엿보이는 거시경제 철학의 변화는 물가 불안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는 '폭탄돌리기'의 예고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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