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20% 축소에 우려감
'민주 시민'되는 법 가르쳐야
초중등학교에 '창의ㆍ인성' 교육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학생들에게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인성을 길러주기 위해서 교육 내용을 20%나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대통령직속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제안이다. 자칫하면 '창의 교육'을 앞세웠던 제7차 교육과정의 경우처럼 학교 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심각하게 추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제안이다.
학생들에게 사고의 확산과 수렴, 문제 해결 능력, 독립성, 개방성, 몰입성, 호기심과 흥미 등을 앞세운 창의력과 신뢰, 협동, 책임, 배려 등의 기초 인성을 길러주겠다는 교육 목표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비판을 받아왔던 암기식 교육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경험과 현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육 현장을 어렵게 만들었던 제7차 교육과정이 확실한 증거다. 그동안 제7차 교육과정이 애써 강조했던 창의력 교육이 성과를 거뒀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학습량 감축과 과도한 선택권에 의해 학생들의 학력만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을 뿐이다. 특히 과학의 경우는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
학교에서 창의ㆍ인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자유'보다는 전통과 관행이 더 강조되는 사회풍토에서 창의력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법과 윤리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환경에서 인성도 허울좋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교육당국에 의해 학교 운영의 모든 면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의 자유가 용납되기도 어렵고, 획일화된 인성 교육의 폐해도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더욱이 우리의 유별난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대한 우리의 신뢰 수준은 극도로 낮은 현실도 문제가 된다. 우리 학교를 검증도 받지 않은 낯선 교육철학의 실험장으로 만들어서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그동안 그 중요성을 외면해왔던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진정한 창의ㆍ인성 교육을 추구하는 더욱 현실적인 방안이다. 사실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사고(思考)와 기초 인성을 가르쳐야 할 1차적인 책임은 학교의 교사가 아니라 가정의 학부모에게 있다. 진심으로 신뢰할 수도 없는 학교에 교육의 모든 짐을 떠넘기려는 이중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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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내용 감축을 앞세운 창의ㆍ인성 교육이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과목이 바로 '과학'이다. 우리 학교 현장에서 과학 교육은 심각하게 추락해버렸다. 일본의 '유토리(餘裕) 교육 철학'에 따른 교육내용 감축 요구를 순진하게 수용해서 '쉽고 재미있는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을 추구했던 결과다. 70%를 차지하는 문과 학생들은 과학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고, 이과 학생들의 과학 교육도 실망스러웠다. 만약 또다시 창의ㆍ인성을 핑계로 교육내용을 감축해야 한다면 과학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획일적인 탐구 중심의 교육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나친 탐구 활동의 효율도 의심스럽고, 자칫 과학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초중등학교의 과학 교육의 목표를 창의적인 과학자 양성이 아니라 민주 사회의 시민에게 꼭 필요한 교양 교육으로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현대 문명의 기반인 과학정신과 과학적 인성을 가르쳐야만 진정한 의미의 문과ㆍ이과 구분 철폐도 가능해진다. 창의ㆍ인성을 앞세운 화려한 교육철학의 환상에 빠져서 제7차 교육과정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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