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원에서 특별한 입학식이 있었다.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끊어졌던 고학력 여성들을 워크숍 전문가로 양성하는 WLP(Workplace Learning & Performance) 아카데미 1기가 첫발을 떼는 자리였다.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입학생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이들은 10주 동안 교육을 받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워크숍 전문가로 거듭나 새로운 커리어를 펼치게 된다.
1기를 모집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절감했다.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성 우수인력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정원을 당초 계획보다 3배나 늘렸으나 아쉽게 탈락한 후보자들이 태반이었다. 석ㆍ박사 출신에 출중한 외국어실력, 탄탄한 직장 경력 등을 가진 빼어난 여성 인재들이 단지 몇 년 일을 쉬었다는 이유로 다시 맘껏 일할 곳이 없어 고민해왔던 것이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각종 고시 수석을 여성들이 휩쓸고 있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전문직에서도 여성 비율이 크게 높아져 남자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엄살(?)도 들려온다. 남성 일색이었던 사회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힌다. 여성 리더가 많은 기업은 실적도 더 좋다고 한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3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고위 관리직에 여성이 많은 기업은 적은 기업에 비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5.1%나 높았고, 주주수익률(TRS)도 3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소위 '알파우먼'들의 활약은 아직 특정 부분에 불과하다. 사회 전반에서 의사결정 과정의 여성지위를 나타내는 국제연합(UN)의 여성권한척도에서 한국은 2008년 108개국 중 68위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대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가운데 멕시코를 제외하고 최하위 수준이다.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과 정부투자기관, 산하기관 61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과장급 이상 여성 비율은 6.5%, 임원 중 여성 비율은 고작 3.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여성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기업부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전 세계 호텔체인을 둔 메리어트 호텔은 20년 전부터 다양성 제도를 조직에 마련했다. 1989년에 시작된 다양성 위원회에서는 여성과 소수자의 동등기회를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2005년에는 '메리어트 다양성 엑설런스상'을 제정하는 등 다양성을 위해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올해 안에 최고경영자(CEO)가 여성 및 소수자인 호텔을 500개까지 확대한다는 것이 메리어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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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더 노력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주축이 돼 시작한 '정규직 파트타임제 시범사업'에 기대가 크다. 아직 시범 단계이나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집중근로시간제 등 근무시간과 형태를 유연하게 조절한 유연근무제가 여성인력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원칙은 하나다. 말로만 여성 인재 활용을 부르짖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유리천장'에 막혀 승진은 꿈도 못 꾸는 여성들이 없어야 한다. 기업은 당장 탁아시설부터 완비하고, 고위관리직에 여성을 임명하는 행동을 보여 주면 된다. 정부도 그런 기업들에게 실질적 지원이라는 행동을 보여 주면 된다. 그것이 기업과 사회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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