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벗다"···'약한모습'으로 ♥받는 캐릭터들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안방극장이 무장해제 상태다. 돼지껍데기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왕, 명품이 또 다른 자아인 무개념 여검사, 짝사랑의 옳은 예를 보여주는 중년의 게이 등 껍질을 깨고 속살을 내보인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권위타파의 선두주자는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깨방정' 숙종이다. 숙종 역의 지진희는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천인 동이의 재능과 품성을 알아본 깨인 왕답게 귄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부드럽고 인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인간적인 왕은 생전 처음 해 보는 것이 너무 많다.

돼지껍데기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급박한 상황에서 도망을 치다가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등 왕이 현실에 발 디뎠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허당'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색다르게 다가온다. 왕이 아닌 척 동이에게 '벼락치기'의 묘수를 알려주고, 동이에게 "허약하다"는 타박을 듣고는 괜스레 무술에 관심을 가진다.

'동이'의 이병훈 감독은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보여진 조선시대 왕들은 근엄하고 매번 같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모든 왕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왕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특히 숙종은 수렴청정(대리정치)를 거치지 않은 유일한 왕이었다. 그런 성격의 왕이라면 드라마 속 모습처럼 남의 눈치는 보지 않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에서는 일도 사랑도 거침없이 쟁취하는 능력있는 여검사 대신 정신적 성장이 필요한 무개념의 여검사가 등장했다.

마혜리(김소연 분)는 IQ 168의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개념(?)은 탑재하지 못했다. 자신의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좌충우돌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왠지 짠한 느낌.

비만이었던 과거를 가진 마혜리는 채소를 주식으로 하면서도 가끔 우울할 때면 남들 몰래 과자를 먹고 한정식집에 가서 혼자 한 상을 거하게 차려먹기도 했다.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일하다가 검사 일에 재미를 붙이고,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누구나 조금은 가지고 있는 소소한 정의감으로 자연스레 검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도 속살을 내보인 게이가 인기를 얻었다. 유명 미술관의 관장으로 전진호(이민호 분)가 목숨을 건 프로젝트의 결정권을 손에 쥔 인물 최도빈(류승룡). 소위 권력을 가진 이 남자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개인(손예진 분)과 진호에게 친구처럼 다가갔다. 성급하게 드러냈다가는 다칠지도 모르는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솔직하게 보이고 약한 모습도 과감하게 노출하는 이 인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감도 역시 높았다.

이런 캐릭터들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한 드라마 제작관계자는 "단조로운 전개의 드라마들 속에서 차별화를 주기 위해 이 같은 색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비현실적으로 멋있는 캐릭터들은 이제 지겹다. 자신과 비슷한 약점을 가진 캐릭터들에 감정이입이 시청자들도 감정이입이 더 쉬울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캐릭터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 몫 한다"고 설명했다.

박소연 기자 m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