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 예술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들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국립 박물관'부터 시작해 '장난감 박물관', '초콜렛 박물관', '물 박물관'과 같이 이색적인 박물관까지.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만큼 독특한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물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덕분에 나에겐 시간이 날 때마다 박물관에 들르는 아주 좋은 습관이 생겼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지금처럼 자주 박물관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박물관은 따분하고 지루한 곳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박물관으로 놀러가 본 적도 별로 없고 학교에서 다같이 박물관으로 소풍을 가는 날엔 "빨리 다 돌고 김밥 먹어야겠다"라는 생각만 했었지 전시품 보는 일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와서 처음으로 박물관에 갔을 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매표소에서부터 나는 학생우대로 무료로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이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들을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무료가 아닌 곳에는 학생할인이 있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관람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학생 할인, 학생 우대 등을 받으며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면 좀 더 자주 접하면서 박물관을 친근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돌아보는 관람객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사람들의 얼굴에선 '얼른 훑어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들 가볍게 와서 둘러보는 순간들을 진심으로 즐기다가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관심 있는 전시품에 서서 사색에 잠기거나 같이 온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박물관을 어떻게 즐겨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박물관에 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유치원생들이나 학생들, 혹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님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박물관에 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건 기본이고 딸의 손을 잡고 온 아버지,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 지극한 부부들, 친구들끼리, 혹은 혼자서, 심지어 박물관을 데이트 장소로 삼아 둘러보는 연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박물관이 대접받는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에 있는 박물관들이 한국에 있는 박물관들보다 전시품이 더 많다거나 건물이 더 훌륭한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박물관들은 한국에 있는 박물관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건 바로 이 곳에 있는 박물관들은 모두 박물관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점이다. 이 곳 사람들에게 박물관은 단순히 자료를 모아두는 장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박물관 견학을 가까이 하면서 박물관을 살아있는 학습도구로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다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박물관의 가치를 일깨워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나라 박물관들이 좀 더 사랑받고 대접받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임하나
정리= 박종서기자 jspark@asiae.co.kr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지금 안 사두면 평생 후회할 수도"…역대급 괴물 ...
◇ 임하나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던 중 연수차 러시아로 떠났다.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많았지만 이제 '러시아의 진짜 매력에 눈을 떴다'고 말할 만큼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며 유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