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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일본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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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등 동북아시아 중심 경영 강조

[아시아경제 황상욱 기자]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기업으로부터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서로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본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식적인 첫 행보는 일본 경제인과의 만남이었다. 한 때 일본 기업을 넘어섰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던 이 회장이 갑작스럽게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일갈한 이유는 뭘까. 사실 이 회장의 변신, 삼성의 변모에는 언제나 '일본'이 있었다. 삼성이 일본을 뛰어넘어 '아시아 중심 경영'을 펼쳐나갈 지 주목된다.

8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최근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聯·경단련) 회장으로 내정된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스미토모화학 회장 등 일본 기업인들과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제조 능력이 뛰어나고 무한한 시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3국의 경제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간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 회장은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기업으로부터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서로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본다"고 전했다.
요네쿠라 회장은 지난 1월 경단련 회장에 선임됐고 5월에 공식 취임할 예정인 일본의 대표적인 재계 인사며 국제통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스미토모화학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할 예정에 있어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건희 회장에게 '일본'은?=
이건희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당시 부친인 故 호암 이병철 전 회장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귀국했으며 이후 다시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 일본을 본격적으로 체험했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도 서울대 졸업 후 게이오대에서 일본 제조업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삼성의 변신에 가장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지난 1993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살아남는다'라는 그의 발언은 삼성의 '제2 창업 신화'를 열게 한 원동력으로 풀이된다.

1993년 6월4일 이 회장은 일본에서 당시 윤종용 삼성전기 사장, 후쿠다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 등 10여명을 불러 기술개발 대책회의를 가졌다. 후쿠다 고문은 이 자리에서 이 회장에게 삼성전자에 대한 문제점을 담은 '후쿠다 보고서'를 전달했고, 이 회장은 다음날 독일로 넘어갔다. 이틀 뒤인 6월7일 이 회장은 100여명에 달하는 그룹 내 사장단 및 임원들을 긴급 소집, 선언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회장에게 있어 일본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결정적인 계기까지 마련해 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특히 처음에는 일본을 배우는 자세에서, 일순 넘어섰다는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으나 다시 일본 기업으로부터 더 배워야 한다고 강조, 일본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삼성에게 '일본'은?=
사실 삼성전자에게 있어 일본은 굴욕적인 시장이다. 주력 아이템인 휴대폰은 일본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LCD 모니터 판매 등도 LG전자에 뒤진다. 글로벌에서는 삼성전자 휴대폰의 점유율이 20%를 넘지만, 일본에서는 고작 3% 정도다. 평판 TV 부문은 지난 2007년 아예 일본에서 철수하는 등 B2C는 거의 포기상태다.

일본 기업과는 워낙 많은 제품이 겹치다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 있는 게 현실이다. 휴대폰은 물론, LCD 등 디스플레이와 주요 IT기기들도 모두 일본제와 피 튀기는 싸움을 진행 중이다.

반면 일본, 미국으로부터 배웠던 반도체는 일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반도체 생산 설비 들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수입했지만 이제 국산화율이 상당한 수준에 달했고, 나노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 있다.

게다가 삼성은 주요 일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발전했다는 과거도 있다. 현재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SDI는 지난 1970년 일본 NEC와의 합작을 통해 설립된 회사다. 1984년 삼성전관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2005년 일본 NEC가 보유하던 삼성SDI의 지분을 처분하면서 양사간 관계가 정리됐다.

또 1969년에는 일본의 산요와 제휴해 삼성산요전기가 설립됐고 이 회사는 이후 삼성전기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전자는 2004년 소니와 합작해 S-LCD를 공식 출범했고, 삼성석유화학은 일본 미쓰이석유, 미국 아모코와 합작해 설립된 기업이다. 자동차 사업 진출 때도 닛산과 합작했으며 삼성테크윈은 펜탁스와 합작해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를 출시하기도 했다.

라이센스 부문에서의 협력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4년 소니와 양사의 주요 제품들에 대한 '특허 포트폴리오' 상호 사용 라이센스를 체결했고 2008년에는 마츠시타와 반도체 관련 특허를, 지난해에는 도시바와 반도체 특허 크로스 라이센스를 체결했다. 샤프와도 지난 2월 LCD 특허에 대한 상호 사용에 합의했다. 삼성SDI는 후지쯔와 PDP 특허를 놓고 분쟁하다 크로스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동반자가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과는 비즈니스 자체가 B2B 성격이 강하다"며 "부품 등에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기, 삼성SDI 등도 각각 일본에서 주요 부품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일본·중국 협력 강화 강조, 이유는?=
이건희 회장이 복귀 이후 공식적인 첫 행보에서 강조한 중국, 일본과의 협력 강화는 이 회장의 '위기의식'과 연관된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복귀와 함께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또 "10년 내 삼성의 대표 제품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북아 3개국의 협력 강화라는 복안을 내놨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각각 세계 2위, 3위의 경제 대국인 만큼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동북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공식 일정으로 일본 경제인과의 만남을 가졌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곧 중국 경제인과의 자리도 가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수출입 물량에서 중국과 일본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북미, 유럽에 집중하던 삼성이 다시 일본과 중국을 주요 파트너로 인식할 것 같다"며 "삼성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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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욱 기자 oo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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