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서울 시내를 거닐다보면 유럽에서나 봄직한 서양식 건물들을 마주할 때가 많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을 거치는 격동의 시절,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개화의 상징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고층빌딩과 아파트 속에 묻혀 버린 서울의 도심 속에 한세기가 넘도록 나지막한 호흡을 내쉬며 우리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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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사창=경복궁 인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는 번사창이란 곳이 자리잡고 있다. 번사창은 조선의 신식무기 제조공장이다.
1880년대 고종은 청나라에 영선사 김윤식과 38명의 유학생을 파견해 신식무기와 과학기계 제조법을 습득하도록 했다. 이들이 조선에 돌아와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번사창을 건립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무기들은 조선 최초의 신식군대 별기군 창설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건물은 지난 198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5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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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뚝도수원지에는 지난 1908년 대한제국의 근대적 상수도시설이 건설됐다.
영국과 미국의 기술로 지은 상수도 시설은 송수실과 여과지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곳은 1989년 9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 72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뚝도수원지 제 1정수장에 수도박물관이 개관돼 운영중이다.
◇승동교회=기독교 계파인 북장로회를 조선에 전파한 선교사 무어가 주도해 만든 건물이다. 북장로회는 1893년 곤당골에서 시작해 홍문섯골, 구리개를 거쳐 1904년 현재의 승동에 건물을 지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 조선 독립의 중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특히, 3·1운동 준비과정 등에 적극 참여했다. 예배당은 1912년에 완공되었으며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손병희 선생이 지난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설립을 추진했다.
대교당은 1918년 착공하여 1921년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청사와 함께 서울 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78년 12월에 서울시유형문화재 제 36호로 지정되었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정동의 로마네스크 성당인 이 건물은 개항기 서양인들이 모여 살았던 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머물렀던 특수 지역이었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제3대 마크 트롤로프 주교를 중심으로 건축되었고 설계는 영국 건축과 아더 딕슨이 맡았다. 1926년 준공 당시에는 자금난으로 원 설계 중 일부만이 건축됐다가 지난 1996년 원도면을 근거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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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근대교육의 산실로 통했던 배재학당은 개화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정동에 설립했다. 지난 1994년 배재중고등학교가 고덕동으로 이전하면서 정동에는 옛 교사 중 1916년 준공된 동관만이 남아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주변의 옛 모습은 많이 사라졌으나 배재학당 동관은 배재공원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한국근대사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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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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