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시인의 진도의 선홍빛들- 유배와 낙조<1>

여행- 나비가 되는 길.


여행은 사람을 벗고 잠시 나비가 되는 일이다. 새가 아니라 나비가 되는 일이다. 새는 고속과 고도비행의 생명체다. 사람이나 땅으로부터 너무 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론다. 나비는 낮은 고도를 낮은 속도로 저속비행한다. 늘 사람의 가슴 높이께에 있다. 다른 곤충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꽃에 앉되 벌 같은 침을 내꽂지도 않는다. 날개만 제 몸집의 열배가 넘게 큰 순하디 순한 팔랑개비다.

여행은 그런 팔랑개비 나비가 되어 바람속을 누비는 일이다. 내 몸 안에 얼마나 얇고 아름다운 무늬의 날개가 있었는지, 그 날개로 얼마나 많은 꽃과 나무와 바위와 강과 숲과 낯선 지붕위에 앉거나 스쳐가거나 냄새 맡을 수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물 먹은 솜 같기만 하던 일상의 뒷꿈치가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 뒤꿈치로 이왕이면 늘 가장 먼 곳으로만 날아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한 신문의 칼럼 첫머리에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잡동사니란 뜻의 영어단어 clutter의 어원은 ‘가능한 끝까지 묶어둔다’라고 한다. 일상은 대개 잡동사니들로 사람을 묶어둔다. 그러다 묶인 사람까지를 잡동사니 같아지게 한다. 그런 잡동사니의 손아귀힘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여행, 특히 거리감이 분명한 외국으로의 여행이다.


나비는 꽃에 앉되 벌 같은 침을 내꽂지도 않는다



그래서 외국 여행지를 정할 때 나는 보다 이국적이고 비일상적인 곳을 선호한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만세. 오렌지나무. 야자나무 만세. 바닥에는 대리석, 나무로 벽을 친 방에서는 사랑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서늘한 천막 막세!’ 같은 곳이다.


그런데 외국여행은 여행의 최대 의미이고 가치인 ‘어느 날 문득, 바로 떠나기’에선 좀 비켜나있다. 떠나기 위해 기다리고 버려야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여행이란 의미에 가장 쉽게 부응해주는 것은 역시 내 나라안의 어딘가로 문득 나서는 국내여행이다.



진도, 유배지


그러나 진도도 멀다. 광주까지 ktx를 타고 가서 갈아타면 된다지만 그래도 서울로부터는 아득히 멀다. 조선시대의 한양으로부터는 더 까마득했을 터다. 거기에다 그때의 진도는 섬이었다. 남쪽의 땅끝인 해남에서도 더 가야하는 섬. 그래서 정치와 권력에의 입장이 다른 이들을 사형에 처하듯 보내는, 제주도 다음 가는 최극형의 유배지가 됐을 터다.
하지만 그렇게 험난한 유배지였던 곳일수록 이젠 최고의 여행지다. 중심에서 더욱 멀고 깊고 험한 곳일수록 덜 훼손된 낡고 그윽한 풍경과 정취를 더 크고 깊게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진도를 향하는 마음은 아득하긴 해도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비로소 유배지에서 벗어나 여행지로 옮겨가는 듯 가볍기까지 하다. 아침부터 늘 어디선가 시멘트나 차기름 냄새와 학교나 직장상사의 질책과 재촉이 진동하는 듯한 현대인의 일상이 오히려 유배와 유폐의 삶과 닮았으니까.



진도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벌써 20여년 저편이던가. 청소년 심야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라디오작가이던 시절. 가깝게 지내던 다른 프로그램 피디의 취재여행에 따라 나섰었다. 사박오일쯤이었나. 다녀온 뒤에 내 머리에 새겨진 진도의 인상은 볏짚단 빛깔의 돌담과 성곽과 노을, 배탈을 낸 게 아니라 배탈을 멎게 했던 귀하디 귀한 밀주라는 붉은 홍주, 그리고 해변가의 나무발에 죽 이어 붙여져있던 검정 김들이었다. 그 검정 김 말리는 모습이 도시내기에겐 너무 특별한 풍경이었던가. 다녀오고 삼사일쯤이 지났을 때 담당 피디가 이제 김 얘기 좀 그만 쓰지, 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첩에는 정작 그 검정 김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없다. 일하고 있는 현장속에 섞여 사진을 찍는 게 미안했던가. 그렇게 철든 마음은 아니었을 듯한데 여하튼 남아있는 사진은 배를 타고 가다가 찍은 것과 쌍계사 일주문 앞에서 찍은 것, 모네의 노적가리 그림 같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한 어느 성곽마을 근처에서의 사진들이다. 이십여년 전이니 사진속의 모두가 참 젊고 무한해보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그때는 그런 줄 몰랐다. 앞이 꽉 막혀있는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자주 암담했었다.


앞이 꽉 막혀있는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자주 암담했었다

AD

광주의 한 대학앞에서 사진기자를 만나 그의 차로 우선 함평으로 이동했다. 함평에서 기다리고 있던 만화가가 한 시장골목의 유명한 한식집에서 점심을 사주었다. 소고기 육회는 처음 먹는데 젤리처럼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돌솥비빔밥은 그동안 먹어본 비빔밥중 다섯손가락안에 꼽을만했다. 그 무렵의 다른 여행지에서 고가의 진수성찬이라는데도 어딘지 입맛에 맞지 않아서 편하고 안전하게 오육천원짜리 비빔밥이나 한 그릇 먹었으면 싶었던 마음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잘 먹고 일어서니 유배지,라는 진도여행의 한 주제에 좀 미안해진다. 그리고 차에 올라 본격적으로 출발이 시작되니 비로소 불안해진다. 이십여년전과 달리 진도가 마음에 안와닿을까봐서다. 여행숙소나 맛집등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라면 몰라도 여행기는 가는 곳에 마음이 옮겨가지 않고는 절대 쓸 수 없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