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봉두실 할머니 사후 사회 환원 기부 약속 화제

지하철 1호선 제기역에 내리면 진한 한약재 냄새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약령시와 경동시장을 찾은 사람들로 언제나 발 디딜 틈 없는 곳. 낮은 천막 좌판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로 길거리 풍경도 오래전에 바뀌었다.

하지만 길가에 우뚝 선 빌딩들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60년대 서울이 눈앞에 펼쳐진다.


낮은 처마와 삐그덕 거리는 나무 대문, 창틀에 발린 빛바랜 페인트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곳이 용두동 쪽방 촌이다.


밤새도록 무섭게 비가 퍼부었던 7월 어느 날, 골목에서 할머니 한 분이 작은 손수레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손수레에 실려 있는 것은 작은 TV 하나와 3단 서랍장 하나가 전부.


지난 3년간 살았던 뒷골목 골방에서, 팔다리 쭉 뻗고 만세를 불러도 벽이 닿지 않는 앞골목으로 이사하는 중이다.


골목 하나 차이지만 새 보금자리는 할머니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한 지붕 아래 4가구가 살았던 뒷골목 골방은 허리도 피지 못할 만큼 천장이 낮았다.
모로 누워도 두 사람이 눕기 버거울 정도였다. 햇빛은 커녕 비가 조금만 심하게 와도 지붕이 무너질 듯 물이 흘러내렸다. 온 방안이 곰팡이와 거미줄 범벅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4만원.


할머니는 그 곳에서 꼬박 20개월을 살았다. 재계약을 해야 될 때가 다가오자 집주인은 방세를 올리겠다고 했다. 기초수급 대상자인 할머니의 월수입은 40만원 남짓.


그런 할머니에게 방세는 가장 큰 지출인데 그 돈을 올리겠다는 것은 나가라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홀로 이사를 하는 할머니의 이름은 봉두실.


주민번호가 260419로 시작된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수안에서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장사를 시작했지만, 곧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됐다.


한 때는 ‘원조 할머니’로 불리며 족발 장사로 돈도 만져봤지만 동업자의 배신으로 빚까지 떠안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다.


오갈 데 없어진 할머니는 성당을 같이 다녔던 지인의 문간방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생활했고, 그 것이 용두동에 살게 된 계기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결국 봉두실 할머니는 보증금 7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원래 보증금 1000만 원에 예금 잔액 100만 원, 나머지 500만 원은 구청의 도움을 받았다.


할머니의 고민을 해결해 준 사람은 동대문구청의 이춘자 팀장.


주민생활지원과에서 복지서비스 업무를 맡아 기초수급 대상자인 봉두실 할머니를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춘자 팀장은 할머니의 새 보금자리를 직접 알아보고, 보증금도 지원했다. 모자라는 보증금은 동대문구청 직원들이 정성으로 모은 ‘사랑의 성금’에서 충당했다.


여기엔 홀 몸 이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엔 전 재산을 다시 사회에 기부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동대문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홀몸 노인의 사후 유산 기부 운동 - 아름다운 동행- 의 하나다.


봉두실 할머니는 지난 7월 28일에 이춘자 팀장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사후 유산 기부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고 공증을 마쳤다.

할머니는 “의지할 데 없는 내가 이런 도움을 받아서 깨끗하고 넓은 방으로 이사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다”면서 “내가 죽은 후에 기부하는 액수는 적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며 소감을 말했다.


홀몸 노인의 경우 사망 후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없어 대부분 임자 없는 돈으로 떠돌게 된다. 때문에 보증금은 집주인이, 예금은 은행의 소유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후유산 기부는 이런 홀몸 노인의 재산을 보전, 생전에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남은 재산을 다시 사회에 환원시켜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AD

방태원 구청장 권한대행은 “구청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이런 이웃 사랑에 앞장서고 있어서 감사하고 기쁘다”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동대문구(구청장 권한대행 방태원)는 무의탁 홀몸 노인의 생활 지원은 물론 저소득 다문화가정의 기저귀 지원과 한부모 가정의 교복 지원 등 소외된 우리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