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여자도 여행 2>

봉전과 반월, 계당, 선학 마을을 차례로 지나 달천 마을에 이릅니다.1987년의 어느 가을날 생각이납니다. 그 무렵 나는 여수로 가는 작은 바닷가 길을 따라 도보여행 중이었습니다. 지금의 863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다가 달천에 이르렀지요. 달천 마을은 육지와 섬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육지 쪽을 육달천, 섬 쪽을 섬달천이라 불렀습니다. 사실 그 무렵에도 섬달천은 섬이 아니었습니다. 징검다리를 연상케 하는 작은 시멘트 다리 하나가 개펄 위를 지나고 있었고 그것으로 섬달천은 육지와 연륙이 되어 있는 셈이었습니다. 기억에 물이 차면 그 다리는 물에 잠겼던 것으로 생각이 납니다. 나는 천천히 그 다리를 건너 섬달천으로 들어섰지요. 생선 알집처럼 둥글게 감아 돈 만 안으로 쉰 채쯤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다 물빛이 푸르렀고 만안으로 들어선 햇살들이 따뜻했습니다.


"여자들만이 사는 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동네의 고샅길들을 기웃거리며 걸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너 댓 채의 먹기와 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전통 한옥 짓기의 맥이 실질적으로 끊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먹기와 집들은 일제 강점기 혹은 그 이전 구한말쯤에 세워진 것들이라 해야겠지요. 외딴 섬마을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먹기와 집의 모습만으로 가슴 안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지요. 아, 이곳에도 만만찮은 생의 이야기들이 펼쳐졌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처음 마을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내 마음 속에 펼쳐진 마을 이미지는 '하늘에 이르다 達天' 였습니다. 오래 전 이 마을에 사셨던 어르신중의 한 분이 ‘하늘에 이르고 싶은 원대한 꿈을 지녔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요. 만의 맨 끝 언덕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먼 수평선과 하늘이 아스라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내게 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은 달천의 본디 이름이 달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순간 짧은 감탄사가 내 입에서 새어나왔습니다. 달내강 전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담에 달래강 이야기는 못 다한 오누이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외딴 바닷가 마을에 어린 오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둘은 사춘기에 이르렀고 어느 비오는 날, 젖은 동생의 몸을 본 오라비는 자신의 욕정의 불순함을 한탄하며 스스로 남근을 끊고 목숨을 지웁니다. 뒤를 쫓아온 누이는 목 놓아 울며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고 눈물을 쏟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먼 남쪽 바다 외딴 섬마을에 이런 이야기 하나쯤이 떠돈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삶의 이미지가 훼손될 일은 전혀 없겠지요. 나는 그 노인에게 혹 이곳에 사랑을 못 이룬 처녀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물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때 만안으로 작은 배 한 척이 들어오고 있었지요. 고깃배가 아니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작은 가방이나 봇짐들을 들고 있었지요. 나는 막 배에서 내린 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배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그이가 내게 '여자도'에서 나오는 중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여자도, 처음 듣는 섬 이름이었지요. 이름을 듣는 손간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조네스 생각도 났지요. 배를 타고 이 바다 어딘가로 나가면 여자들만이 사는 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섬 이름을 여자도라 부르게 되었을까,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그 이름은 하늘에 이르다의 달천보다도, 달내강 전설을 담은 달천보다도 내게 더 신비하게 다가왔지요. 그렇게 해서 내 생의 작은 목표 하나가 또 이루어졌습니다. 언젠가 달천에서 배를 타고 여자도에 들어가리라.


그러나 아무리 작은 꿈도 꿈은 꿈이기 마련이어서 그 꿈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껴 두었다고 해야 더 옳을지 모르겠군요. 오랫동안 내게는 홀로 사랑한 땅의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산티니케탄이나 바라나시, 알렉산드리아, 사마르칸트, 야스나야 폴랴나, 크레타섬 같은 이름들이 그런 경우지요.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다가, 영감이 오는 도시들의 이름을 만나게 되면 그 이름들은 내 마음 안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생이 허용하는 어느 순간 나는 그 이름들을 하나씩 찾아 여행을 하는 것이지요.


내가 그 도시들에서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그런 의무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냥 어슬렁거리며 그 도시의 골목길을 걷고, 저녁 불빛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찻집에 모여 물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치면 물끄러미 바람을 쐬거나 하늘의 별을 우러르지요. 그럴 때 나는 이 도시가 내게 나직하게 얘기해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다시 사랑하는 그런 반복에 다름 아니지요. 어떤 철학자의 지혜도, 어떤 예술가의 위대한 예술혼도 기실은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내는 이야기의 불꽃에 다름 아니겠지요.


내 마음은 빌게이츠보다 더 부호가 되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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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나야 폴랴나. 그곳은 톨스토이의 장원이 있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그곳에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썼고 죄와 벌을 썼지요. 어느 눈보라치는 겨울날 모스크바에서 보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그가 자신의 농노들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킨 곳. 그곳의 이름이 야스나야 폴랴나였지요. 언젠가 나는 야스나야 폴랴나에 갈 것이라 생각했고 그 꿈은 20년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산티니케탄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영혼이 배어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스무 살 적 나는 그의 시에 흠뻑 빠졌고 언젠가 그의 혼이 배인 그 마을의 황톳길과 저수지 주변과 챔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거닐고 싶었지요. 그 꿈은 30년 뒤에 이루어졌지요.



내 마음 안에 들어온 도시의 이름들은 내게는 영혼의 보화와 같은 존재들이었지요. 언젠가 이를지도 모를 그 도시의 이름들이 마음 한 쪽 어딘가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세상의 어떤 빌게이츠보다 더 부호가 되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여자도 또한 그런 이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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